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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 데레사의 편지 - [리뷰] 남을 위한, 말이 아닌 실천으로...

효준선생 2014. 8. 9. 07:30





   한 줄 소감 : 선교영화가 아닌 한 사람의 진심을 볼 수 있다.





동유럽의 빈국 알바니아에서 태어난 아녜즈 곤제 보야우지. 로마 카톨릭계 수녀로 인도로 건너간 뒤 사랑의 수녀회를 열고 평생을 빈민과 약자의 편에 서서 희생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변치 않는 봉사 정신으로 세상의 귀감이 되신 분. 바로 마더 데레사로 알려진 그분이다.






비록 천주교인도 아니고 그분에 대해 많은 걸 알지도 못하지만 그분이 남긴 행적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영화 마더 데레사의 편지는 그가 남겼던 편지를 통해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한 다큐 드라마다. 영화 내내 실제 인물의 영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일대기지만 인도에서의 그리고 노벨상 수상직후의 모습까지만 담고 있다.






20세기 초반 남아시아의 영토 대국 인도는 한국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그곳. 광활한 영토와 넉넉한 자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열강의 먹이가 된 채 정작 자국민들은 기아에 시달리던 시절, 거리엔 병자와 고아가 즐비하고 그들을 거둬 먹여줄 기관조차 없던 시절, 죽지 않고 사는 걸 고마워해야 했던 때. 그런 그들을 바로 보며 마치 가족의 일처럼 마음 아파하던 사람이 있었다. 로베타 수녀회의 교장 데레사 수녀. 하지만 여학생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자 바티칸에 윤허를 받아 수녀회를 떠나 거리로 나서며 빈민들을 도울 방법을 강구한다.






처음엔 아무도 서양여자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예수를 믿으라하며 접근한 ‘예수쟁이’ 쯤으로 여긴 지역민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만 살 뿐이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한 것은 그의 진정성이었다.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님을 그들도 알게 된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그들로서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불러놓고 알파벳을 가르치거나 아픈 사람들을 정성껏 씻기고 상처를 치료해주는 모습에선 세상에 저런 사람이 또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정작 가진 것 하나도 없는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인도는 신분계급이 존치하는 나라다. 불가촉 천민이라 하는 카스트 제도는 그 어떤 형벌이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옭아매는 장치들이다. 수녀회에서 공부를 하고 수녀가 되도 절대로 빈민들과는 어울릴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었다. 또 토착 종교인 힌두교도들에게 천주교인들은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경원의 대상이었다. 늘 수녀를 따라다니며 하는 일을 방해하던 힌두교인 부부. 난산을 도와준 계기로 그들 역시 수녀의 열성 팬이 되는 장면, 칼리신전을 수리해 그곳에다 호스피스를 만든 걸 보고는 몰려와 행패를 부리다 물러가는 장면들이 가슴 뜨겁게 연출된다.






이 영화는 비단 마더 데레사라는 인물의 인생 에피소드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근자에 종교기관의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설교를 통해 해서는 안되는 몰상식한 말을 쏟아내고 신도들은 그 앞에서 아멘을 외쳐댄다. 종교의 신념은 보이지 않는 마음 안에 있는 것임에도 그저 보이는 부분에다가 마치 충성을 다짐하는 무리들처럼 행동하고 건축물을 늘리는데 혈안이 된 모습들. 과연 마더 데레사 수녀가 살아서 그걸 봤다면 어떤 말을 할까






종교인들 뿐 아니다. 넘치고 차는 정치인들도 선거때만 되면 ‘낮은 곳을 살피겠다. 민심을 거슬리지 않겠다’ 고 하지만 국회의원 뱃지만 달고 나면 목에 힘을 주고 다니며 안하무인격 행동을 일삼는 그들에게 이 영화를 꼭 좀 보라고 하고 싶다. 지나가기만 해도 병에 걸릴 것 같은 빈민촌에서 병든 자들을 거두고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한 데레사 수녀 앞에서 과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실제 데레사 수녀와 많이 닮은 모습으로 열연을 한 줄리엣 스티븐슨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빈민촌을 걸어가던 뒷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을 듯 싶다.






조국에 가보지 못하는 심정도 억눌러 가면서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외국의 빈민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모습, 그들과 진심으로 어울리기 위해 수녀복이 아닌 평복인 샤리를 걸친 모습, 기득권자라 할 수 있는 로베타 수녀회의 간섭을 벗어나고자 자신의 수녀회를 만든 이유도 다른 생각없이 오로지 봉사에만 집중하고 싶어 했던 그녀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교황의 내한으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하게 된 사연도 우연이 아니다. 모쪼록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잔잔한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