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 [리뷰] 바다엔 고래가 살고 있었네

효준선생 2014. 7. 24. 07:30






  한 줄 소감 : 유해진을 위한, 유해진에 의한, 유해진의 영화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명나라에 대한 견제로 발발된 요동정벌의 선봉장으로 나섰다가 지금의 압록강 변 위화도에서 네 가지 불가론을 내세우며 회군하여 그 길로 고려의 마지막 왕을 내쫒고 새로운 왕위에 오른다. 이를 역사에선 위화도 회군이라 하는데, 역성(易姓)혁명에 준하는 행동으로 자신이 왕이 된 것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명나라로부터 국호와 옥새를 얻어낸다는 게 영화 해적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모티프가 된다.






승자의 왕위 찬탈을 혁명이라 하지만 결국 쿠데타나 다름없는 자신의 결정에 당연히 반대하는 세력들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혹시라도 자객이 자신의 목줄을 노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그는 잠 못 이룬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가 당시 대륙의 주인이었던 명나라로부터 나라의 주체라 할 수 있는 나라이름과 임금의 상징인 옥새를 받아내는데 혈안이 되는 것으로 나오는 건 그에겐 일종의 강박처럼 보인다. 물론 영화에선 그 옥새가 항해도중 고래의 입을 들어간다며 희화화된 설정을 집어넣었지만 씁쓸한 시대상의 반영인 듯 했다.




  


한 나라의 멸망은 임금의 성이 바뀐다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임금이 바뀐 줄도 모른 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백성들에겐 그저 탐관오리나 도적떼나 만나지 않음을 고맙게 여기며 살아야 했다. 딸을 낳으면 공녀(貢女)로, 아들을 낳으면 전쟁터의 화살받이로 보내야 하는 고통도 이제는 예삿일이 된지 오래니 그들에겐 차라리 도적이 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이 영화엔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각자 편을 먹고 나선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고래 뱃속에 들어간 옥새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찾는 목적은 제 각각이다. 위화도 회군때 반대편에 서서 탈영해 지금은 산적 두령이 된 무장, 어렸을 때부터 바다를 땅보다 더 편하게 여기며 살아온 여자 해적, 그리고 그녀에게 모욕을 당한 뒤 절치부심하는 늙은 해적, 마지막으로 위화도에서 무장에게 칼을 맞고 수년간 감옥살이를 했다가 다시 옥새를 찾으라는 엄명을 받은 관군의 수장. 이렇게 물고 물리며 서로에게 라이벌이 되었다가 같은 짝패가 되기도 하는 등 이들의 소란스러운 관계는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동력이 된다.






어찌되었든 고래 뱃속에 옥새가 들어가는 바람에 태조는 전전긍긍한다. 신하들은 왕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당시에 필요한 시책들을 진언하지만 태조에겐 오로지 옥새뿐이다. 그런데 고래라는 게 저 너른 바다에 달랑 한 마리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철선도 아닌 목선으로 그 거대한 고래를 어떻게 잡을 것이며 설사 잡는다고 해도 그 옥새가 무탈하게 뱃속에 있기나 한 것일까






영화에선 옥새는 그 난리 소동을 야기하는 동기가 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누가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다 지금 자기 눈  앞에 무엇이 필요한 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백성들, 비록 지금은 산적, 해적 신세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들은 누군가의 착한 아들, 누군가의 착한 남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고향을 등진 채 모진 바다위에서 생사를 알 수 없이 고생하는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들에게 옥새라는 건 평생 본 적도, 볼 필요도 없는 물건이다. 그것마저도 제 나라에서 만들지 못하고 이웃나라가 강대하다고 해서, 혹은 사대(事大)를 해야 하는 나라라고 해서 받아다 써야 하는 처지라는 게 얼마나 불쌍한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태생이 오락영화다. 장면마다 웃기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유머가 넘친다. 그 중심엔 배우 유해진이 맡은 캐릭터가 있는데 원래 해적이었다가 산적으로 신분을 세탁한 인물로 나온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들은 대개 분위기를 일신하는데 큰 힘이 되고 엉뚱한 듯 들리는 그의 말이 대개는 진실로 이어지는 부분도 웃음이 된다. 하지만 그는 정작 이 영화가 노리는 마지막 한 수다. 해적이 싫어 산적이 되었듯, 이 영화엔 정체가 모호한 것들이 다수 등장한다.






군인이 산적이 되고 납치당한 어린 여자아이는 해적이 된다. 물론 고려의 신하로 녹을 받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조선의 신하로 탈바꿈 한다. 고래는 포유류지만 바다 속에서 산다. 이렇게 경계인으로 사는 시절, 세상이 어수선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산적 두령이 마치 유령처럼 다가와 임금인 태조에게 넌지시 건네는 경고의 말 한마디가 이 영화를 그저 웃고 떠드는 영화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고래를 실제로 등장시킬 수 없는 탓에 대형 향유고래의 모습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했고 고래를 찾아 나선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사물에 대한 무지와 막상 보고 난 다음의 반응들이 상당히 재미있다. 묵직한 메시지로만 채운 영화에 지친 영화 팬들이라면 이 영화는 또 다른 선택지가 될 것 같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해적 : 바다로 간 산적 (2014)

7.4
감독
이석훈
출연
김남길, 손예진, 유해진, 이경영, 오달수
정보
어드벤처 | 한국 | 129 분 | 201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