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명량 - [리뷰]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다면 이길 것이다

효준선생 2014. 7. 22. 07:30






  한 줄 소감 : 누군가를 맹렬히 응원해서 이겼을때의 쾌감과 다음을 기다려야 하는 허전함





수적 불균형 속에서 편먹고 하는 닭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시작과 동시에 상대의 가장 센 놈을 다수가 몰려들며 공격하는 것이다. 일대일로 전개될 것이라는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기도 하고 가장 센 놈을 우선 제거하지 않은 채 비리비리한 놈을 노리는 건 도리어 당할 위험이 크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이 수를 알아채고 가장 센 놈 주변을 에워 쌓거나 가장 센 놈이 이쪽의 다수를 한 방에 보내 버린다면 그건 지는 게임이다.






지금부터 417년 전 이 땅에선 전쟁의 화마가 그치지 않았다. 이웃한 섬나라 왜(倭)나라는 무지막지한 공력을 앞세워 쳐들어 왔고 잘 알다시피 그렇게 시작된 임진년 전쟁은 무려 6년째 잦아들지 못했다. 생각보다 장기전으로 끌고 간 데는 무엇보다 충무공 이순신의 해군이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했고 육지전의 우세승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간절히 원했을 최후의 그날은 오지 않았던 때다.   






영화 명량, 까마득히 오래된 이야기인 임진왜란(정확하게는 정유재란) 한 페이지를 영상으로 옮겨 냈다. 그리고 우연인지 몰라도 21세기 들어 가장 안 좋은 최근의 한일관계를 말해주듯, 이 영화는 상당한 전투의 희열을 선사한다. 그럴 만도 했다. 이순신을 다룬 기존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그려내기 어려운 전투 장면보다는 선조를 중심으로 한 조정대신의 옥신각신과 병영에서의 신경전을 주로 그린 반면, 영화 명량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해서 해상과 선상에서의 결투를 실감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이순신이 아니라 명량인 것은 충무공이 거둔 여러 차례 해상승전 중에서도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명량대첩은 세계 해전 역사에서 손꼽힐 지략전이었고 그만큼 이순신의 극적 효과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는 이 전투로 왜나라의 전투 욕을 최소한 300년은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싸워서 이기는 것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전몰의 위기를 앞둔 장수와 수하의 장병들, 그리고 수많은 민초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의 표시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누구는 아예 투항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적선에 격군으로 실려 초개처럼 목숨을 바치기도 해야 했다. 수장인 이순신 곁에서 죽어간 수많은 부하장병들의 모습을 보니 땅덩어리를 탐하려는 몇몇에 의해 무고한 인명들이 스러지는 장면들이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고 안쓰러웠다. 평온하고 너른 바다처럼 보이지만 수시로 몰아치는 급류가 전선(戰船)을 장난감처럼 만드는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인간들의 싸움질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였다. 이미 역사서를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결국 지지 않고 이겨냈고 그 과정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전세의 유불리를 가늠하는 순간 불쑥 찾아오는 우연이 다소 거슬리지만 그 조차도 이순신의 길게 내다보는 지략 안에 있었던 것이라 생각을 하면 크게 탓할 것은 아니다. 이순신은 아들과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이런 말을 한다. 충(忠)은 임금이 아닌 백성을 향해야 한다고 했다. 전국토가 불바다가 되는 상황에 임금은 파천을 하고 대신들은 여전히 당파를 나눠 싸우고 장수들은 양명에만 눈이 팔려 정신을 못 차리는 통에, 그의 한 마디는 진정한 리더가 봐야 할 곳은, 그리고 기댈 수 있는 곳은 바로 민초, 백성들이란 말이다. 무릇 이 시대의 위정자들이 다시 새겨야 할 명구(銘句)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김한민 감독의 전작인 영화 최종병기 활이 후금의 침략 시기에 한 남자를 내세워 가족을 위해 그들에게 맞선 내용을 그린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정사(正史)를 고증해 가며 그 직전 이 땅을 유린하러 들어온 왜놈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으로 좀더 업그레이드 된 모양새다. 감독의 차기작이 또 어떤 내용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처럼 이 땅을 지켜낸 백성들의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것은 또 없을 것 같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