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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숙희 - [리뷰] 본능대로 살아간다는 것의 두려움

효준선생 2014. 7. 20. 07:30






  한 줄 소감 : 매 순간 이성과 감성을 선택해서 살 수는 없다.





주인공의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달고는 있지만 실상 영화 숙희는 남자 주인공인 윤교수의 심리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 같다. 그 이유는 금욕주의자에 가까운 철학 교수인 그가 숙희라는 간병인을 통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통제된 환경과 그 이후의 변화에 대해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숙희로 나온 여배우(채민서 분)의 노출장면에 오버 포커스된 면이 없지 않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공력을 가진 심리극이다. 즉, 노출등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억눌린 성(性)에 대한 분출, 모성애를 통한 절제될 수 없는 여성심리들이 잘 표현되고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소 그로테스크 하거나 스릴러의 양상을 띠고 있긴 하지만 함께 깔리는 경쾌한 음향 등을 통해 중화시킨다.






윤교수는 지방의 모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지만 그 자신이 마치 오랜 시간 도를 닦는 선인(仙人)의 모습을 견지한다. 예전 신학을 배웠다는 설명이 깔리긴 했어도 이성 제자의 노골적인 유혹에도 그는 거칠게 외면하는 장면들이 그의 어제를 설명한다. 그의 그런 모습은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했지만 부부간의 금슬은 전혀 찾아 볼 수도 없고 아내와 함께 있는 걸 오히려 불편해 하는 그의 모습이 어딘지 병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숙희가 돋보이는 건 다름이 아니다. 이 여자의 과거와 오늘은 다소 복잡하면서도 이중적이다. 네일숍을 하면서도 틈틈이 간병인 일을 하는 그녀, 남편이 있지만 폭력적인 가정사를 보면 왜 저런 걸 감수하고 살고 있을까 싶다. 남편과의 잠자리는 거의 폭력에 준하지만 그녀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녀는 젖먹이 아들에겐 성심이다. 그런데 그녀의 모성애는 좀 이상한 곳으로 연결된다. 다시 말해 여성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두 가지 마음이라 할 수 있는, '여자로서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것'과 '엄마로서 자식을 사랑한다' 의 두 가지가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윤교수의 간병인이 되어선 윤교수 한 곳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윤교수가 쓰러진 뒤 아내마저 그 자리를 비우고 숙희는 간병인으로 들어온다. 사지가 마비가 되고 의사표시마저 불가능한 윤교수를 향한 숙희의 태도는 윤교수를 마치 자신의 어린애 대하듯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겐 결코 시도하지 못했을 여성 주도적인 성행위를 감행한다. 이런 행동에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는 윤교수다.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들이, 자신의 관념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비 윤리적인 일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반항도 해보지만 무기력할 뿐이다. 이 부분은 숙희가 자신의 남편을 통해 받아들이는 어제까지의 삶과 닮았다. 






숙희의, 윤교수에 대한 이런 저런 시도는 확실히 논란이 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단지 환자와 간병인 사이에서의 무분별한 애정행각으로 볼 수 없다. 그 이전까지 자신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들이 실제 발생했을 때 인간은 우선 당황하지만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난다면 마치 처음 일을 치루고 생기는 죄책감, 그리고 이어지는 당연한 반응의 수순인 셈이다.






이미 언급한 바대로 이 영화가 갇힌 성욕과 모성애의 충돌을 시도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좀더 치밀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 건 우리 스스로를 옥죄는 표현의 자유에서 자기 검열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자와 한번도 보지 못한 캐릭터의 간병인 사이에 벌어지는 뜻밖의 실험극같은 내용에 다소 움찔했지만 정상을 회복한 윤교수가 후반부에 보여주는 행동은 다소 평면적인 반응인 것 같아 아쉽다. 






전작인 영화 채식주의자 때의 잔향이 아직도 남아서인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채민서라고 했을 때의 기대감은 여전했다. 그녀가 다른 여배우들이라면 선택하지 못할 센 캐릭터의 영화를 다시 한 이유를 도전이라 했던데 그녀의 도전에 박수를 주고 싶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숙희 (2014)

Sookhee 
8.5
감독
양지은
출연
채민서, 조한철, 양은용
정보
| 한국 | 93 분 | 2014-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