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신의 한수 - [리뷰] 인생은 반상 위의 대국

효준선생 2014. 7. 14. 07:30





  한 줄 소감 : 정을 상징하는 바둑과 동을 상징하는 싸움이 잘 만난 케이스





지금은 그 열기가 한풀 꺾였지만 예전 바둑의 인기는 대단했다. 거의 모든 신문사가 각자 주관하는 바둑대회를 열었고 그 대국 복기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거의 매일 신문지상에 실렸다. 이후 상당한 금액의 우승상금이 걸린 바둑대회가 생김으로써 역설적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어쩐 일인지 바둑의 인기는 예전만 못해졌다. 지금 활동하는 기사들 중에선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사람들도 있고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스승이나 동문수학한 선배를 꺾고 두각을 나타내던 인재들도 있었다.






솔직히 바둑은 할 줄도 볼 줄도 모른다. 어디선가 들어본 유명 기사들의 이름과 몇가지 바둑 용어만 머릿속에 맴돌뿐이다. 그런데 영화 신의 한수를 보니 바둑의 묘미에 빠질만도 해 보였다. 왜냐하면 바둑판 자체가 인생의 축약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나의 바둑 시합에서 벌어진 반상 위의 돌 위치들이 다시 반복될 확률은 거의 로또 수준이라고 하며 그렇게 다양하고 오묘한 포석은 우리네 인생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상당히 하드보일드한 복수극이다. 사기 바둑판에서 목숨을 잃은 형을 대신해 잘 못나가던 프로기사였던 동생이 수형시절 무술을 연마하고 다시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문약해 보이는 뿔테 안경의 청년이 감방 안에서의 생활을 오히려 자기극복의 시련기로 삼았고 나중엔 그에게 대적할 만한 기사가 없다는 설정은 과장되지만 그럴 듯 해보였다. 무엇보다 그에겐 해야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복수라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조력자들의 이야기도 결코 놓칠 수 없다.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캐릭터화 되어 눈길을 끌고 있으며 특히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바둑을 둘 수 있다는 맹기바둑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복수의 발단이자 사기바둑으로 물을 흐려놓는 살수라는 그 이름도 어마어마한 오사장 패거리들의 무력도 대단했다.






이렇게 원수를 갚기 위해 엄청난 내공을 쌓아 놓은 남자와 그 반대편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가며 자신만의 아성을 공고히 해가는 조직간의 결투는 바둑이라는 굉장히 문예적인 대결을 통해 완성되어 간다. 일대일로 상대하는 과정은 마치 바둑의 수 싸움과 같아 보였고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통수들도 바둑과 무척 닮아 있다.






물론 복수극과 권선징악은 맞물려가게 마련이다. 형의 복수를 꿈꾸었다가 남자로서의 욕심도 살포시 드러내는 과정, 그리고 잘 나가던 프로기사였다가 약점을 잡힌 채 검은 세력에 의해 자신의 재주를 엉뚱한 데다 쓰고 마는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뒤엉켜 다양한 인생살이를 선보인다.






이 영화는 일단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무슨 자(者), 무슨 사람이라는 성의없는 제목이 아니라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의 제목과 그동안 작품 선정에 있어 자신과 가장 잘 맞는 기성복을 고르는 듯한 재주를 가진 정우성의 조합이 호기롭다. 어찌보면 복잡다단한 이야기 줄기를 잘 끌고 나간 연출의 힘도 좋았다. 요즘 한국액션 영화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는 동남아 호신무술의 범용도 인상적이지만 인정미가 보이지 않는 활극으로만 비출 수 있는 약점도 동시에 갖고 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신의 한 수 (2014)

7.3
감독
조범구
출연
정우성, 이범수, 안성기, 김인권, 이시영
정보
범죄, 액션 | 한국 | 118 분 | 2014-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