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 [리뷰] 20년 전 오늘, 기억과 기록 사이에서

효준선생 2014. 7. 9. 07:30







한국에서 오랜 세월동안 기승을 부렸던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드디어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은 지금부터 21년 전 일이다. 정치인 김영삼은 야당에서 뼈가 굵었지만 그 자신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 안달했던 인물이고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상당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오죽하면 야권통합이라는, 87년 6월 항쟁이후 대다수가 갈망했던 요구를 저버린 채 당시 집권당인 민자당과의 3당 합당이라는 무리수를 던진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뒤 이상한 일은 외부에서 터져 나왔다.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1994년 추석을 앞둔 9월 지존파에 의해 벌어진 엽기적 살인 사건으로 시작해 곧이어 한강 강남북을 이어주던 성수대교가 느닷없이 폭삭 무너졌고 다시 이듬해 여름엔 강남 한 복판에 있던 삼풍 백화점이 주저앉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연이은 변고를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옛 사람들이 그랬듯이 하늘의 뜻이라고까지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는 바로 이 시점, 1994년에서 이듬해까지 벌어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세 개의 사건을 당시의 자료화면 등으로 엮어 만든 다큐멘터리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일인데 ‘겨우’라는 생각보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구나 싶은 게 화면 속에 보인 사람들의 옷차림이거나 말투, 그리고 가장 주목하고 싶은 건 그들의 목소리에 배어나오는 생각들이 지금과 정말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금도 존속하는 유명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얼핏 기억에 나는 얼굴의 주인공들이 나름 논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와 지존파 사건에 대하여 당시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 하던 사람들과 연계해 대명천지에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냐며 분개를 하고 있다. 반대 의견은 반영되지도 않았다. 요즘도 망언으로 주목받고자 하는 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목사라는 사람이 떠드는 가당치도 않은 궤변도 한 몫 거들고 있다.






하지만 그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들 사건을 직접 목도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가장 위험한 것은 엽기적인 살인도,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린 건축물도 아닌 사회구성원들의 통제적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그때가 비록 문민정부의 간판을 달고는 있지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국가정책 우선주의에 길들여져 출세하고 돈을 모아왔던 기득권 세력들이 목에 힘을 주던 시절이기에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게 하는 언사들이 속출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오래전 한국 땅에 벌어진 큰 사건을 다시 소개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얼마전 발생한 세월호 사건과 자꾸 오버랩하게 만드는 두 개의 붕괴사건, 그리고 당시 유가족이 한 이야기,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냐고. 미리 예방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며 마치 20년 뒤를 예견이라도 한 듯한 발언이 충격적이었다.






다른 나라들은 100년이 걸려도 하기 힘든 중진국 수준으로의 도약이라는 목표를 향해 고도의 압축 성장을 한 탓에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안으로는 곯아 터져 버린 시대의 상처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다시 다리가 세워지고 백화점이 무너진 자리에 다시 아파트가 올라가 있고 지존파 범인들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오래지만 정말 이런 일이 이 땅에서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영화는 후반부 다시 지존파 사건으로 귀결된다.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들은 당시 유행했던 강남 오렌지 족들에게 반감을 품었고 중소기업 사장 부부를 납치해 살해했다. 각자 10억을 모아야겠다는 목표와 그 때문에 잡탕밥 정도는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사형 집행이 20년 가까이 시행되지 않고 있지만 97년 김영삼은 자신의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 상당수의 사형수에게 일괄 형 집행을 가했다. 잠시나마 사형제에 대한 찬반도 있었고 지금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빠른 3심까지의 판결이 과연 어떤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던 건 아닌가 의심도 되었다.






지존파가 죽인 5명, 성수대교에서 죽은 사람 30여명, 그리고 삼풍 백화점에서 죽은 500여명, 단순히 사망자 수만 놓고 보자면 삼풍 백화점의 사례가 최악의 결과였지만 이 나라 위정자의 판단엔 조금 다른 면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서 궁금해 하던 사항들은 자막을 이용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 당시를 인지하지 못했던 젊은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임기 후반 어리석은 경제 정책으로 수많은 서민들을 도탄에 빠트린 외환위기를 자초했던 바, 그로 인한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개인적으로 청춘기를 보낸 90년대는 별의별 일들도 많았던 때로 기억된다. 이 영화는 회고적 성격도 강하지만 최근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보면 반면교사의 역할도 겸비하고 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논픽션 다이어리 (2014)

Non-fiction Diary 
9.4
감독
정윤석
출연
고병천, 김형태, 박상구, 조성애, 오후근
정보
다큐멘터리, 스릴러 | 한국 | 93 분 | 2014-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