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황제를 위하여 - [리뷰] 하룻 강아지를 알아본 범

효준선생 2014. 6. 12. 07:30





   한 줄 소감 : 더 큰 그림을 그렸더라면...
 





몇 해 전 프로 스포츠 불법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 제명된 야구 선수가 있었다. 그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상당한 실력을 뽐내던 기억이 있어 검색을 해보았지만 최근 소식은 없는 모양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왜 스포츠 도박까지 손을 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결국 가장 공정해야 할 스포츠에 불공정이 끼어든 사례였기에 그런 중한 벌을 받아야 했다. 한때는 잘 나가던 야구 선수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스포츠 도박에 연루되어 선수 생명은 끊어졌고 겨우 실형은 면했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워낙 파이팅이 뛰어난 지라 눈여겨 본 회장이라는 사람에 의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시작된다.





영화 황제를 위하여는 본격 느와르를 표방하고 나선 부산표 영화다. 이젠 상투적이지만 이 영화엔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이다” 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도 그럴 것이 혈혈단신 조직에 낙하산으로 들어간 녀석에게 주변의 시선이 고울 리 없고 언제든지 제거당할 수 있음은 아마 본인도 잘 알 터이다. 그런 헛헛한 마음을 달래 줄 차연수와의 격정적인 베드신도 그 연장성상에 있다. 





처음부터 지나칠 정도의 칼부림과 선정적인 정사장면을 뒤섞은 오프닝 크리딧은 이 영화가 만만치 않겠다 싶게 만든다. 하지만 펼쳐 놓고 보니 허망하다. 소위 조직 안에서 서로를 견제하고 위로 치고 올라가려는 심보는 이해할 수 있지만 설명하기에 애매한 뜬금없는 상황들이 거친 화면과 함께 금세 지치게 한다. 느와르는 그저 칼을 휘두르거나 검은 양복을 입고 목에 힘주는 패거리들의 무용담만은 아니다. 힘이 우선되지만 그것엔 적절한 사유가 있고 관객과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 왜? 라는 의문을 들게 하고, 그 의문을 적절하게 해소해 주지 못하는 건 이 영화의 약점이다. 부산의 경제권을 아우르는 이 정도 규모의 소위 ‘조직’의 비리를 파헤치는 그 흔하디 흔한 '정의'의 형사는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이렇게 좋은 먹잇감을 두고 경쟁하는 다른 ‘파’ 조직도 없다. 무주 공산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정작 적은 내부에 있었다.





과거 같은 패거리였지만 감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어깨,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시도하다 무위로 돌아간 뒤 다른 생각을 품게 된 영감,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인지 보스의 총애를 독차지 하는 것이 못마땅한 다른 녀석들. 이들의 얼키설키한 관계의 불안함이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 관계의 미묘함은 정교하게 조직된 트릭이나 반전, 짜임새가 아니라 상대에게 ‘칼을 먹이고’ 분노하고 의심만 할뿐이다. 물론 주인공들의 예견할 수 없는 심리 변화를 좇는 것도 불편하지만 그 무엇보다 확장되지 못한 채 양아치 짓이나 일삼는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조직’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른 이환(이민기 분)과 차연수(이태임 분)의 베드신은 확실히 작정하고 찍은 것처럼 보인다. 불안한 자신의 처지를 보스와 영감이 공유했던 차마담(보스가 일컫는 차마담과 이환은 일컫는 차연수는 늬앙스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다)을 향한 활화산같은 구애는 사랑이라고 하기보다 연민에 가까워 보인다. 특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의 측배위 정사 장면은 베드신도 배우들에 따라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좀 더 극의 활력을 위해 장치되어야 했을 차마담의 역할은 미진했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이환의 거의 유일한 편이었던 그녀가 그대로 소진되고 만다.  





촉망받는 야구선수가 불법 스포츠 도박사건에 휘말려 아웃되고 아주 오래 전의 인연으로 자리를 마련하게 된 뒤 그의 행보는 이 영화의 주요한 이야기 줄기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 과연 황제의 꿈이란 게 있었을까 싶다. 만약 회장이 건재해 자신을 잘 돌봐주고 차연수와의 로맨스가 유지될 수 있었다면 그는 그저 그런 조직의 중간보스로 만족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그를 자극하는 주위의 행패에 본능적으로 반응했을 뿐이고 그렇게 얻은 최고의 자리란 건 그와는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쉴새 없이 상대의 배를 향해 내리꽂는 칼부림의 쨍한 소리도, 어느 여배우가 눈물을 보이며 자신이 가진 건 몸뚱아리 밖에 없다며 처연해 하는 모습과 영화의 주인공 둘이 마치 홍콩 느와르 전성기 때 자주 등장했던 멋지게 세상과 맞서는 장면들에서도 왜 이렇게 공허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마치 백사장 위에 세워놓은 부산 해운대의 마천루 빌딩들처럼이나.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황제를 위하여 (2014)

5.7
감독
박상준
출연
이민기, 박성웅, 이태임, 김종구, 정흥채
정보
액션 | 한국 | 104 분 | 201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