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 - [리뷰] 이제 만나러 갑니다

효준선생 2014. 6. 9. 07:30






   한 줄 소감 :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산다는 것...어렵다
 





집안의 가장이 타계하고 나면 나머지 구성원들에겐 마치 집안의 기둥이 쓰러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가정사 대부분이 그로부터 시작해 그에게로 끝이 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가부장제가 심한 한국에선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여전히 농촌이 한국 사회의 전형이었던 60, 70년대만 해도 가장의 비위를 거스른다는 건 그 집안을 떠나겠다는 결심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개의 무작정 상경의 뒷 배경엔 자신의 경제적 독립을 갈구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의 권위적인 행사가 못마땅해서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개인의 입장이 존중받게 되자 한 집안의 가장은 그 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을 일컫는 단어일 뿐 더 이상 예전처럼 만기친람의 권한 따위는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죽음을 두고는 모두에게 상당한 심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한 집의 가장의 죽음을 두고 나머지 식구들이 전하는 감상(感傷)이 영화 아버지의 이메일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탓에 그의 생생한 증언은 거의 없다. 생전에 둘째 딸에게 남긴 이메일을 통해 이 영화의 연출자이자 둘째 딸의 중재로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가족이 품고 있던 생각들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집 사람들, 만만치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결코 호의적이지만 않다. 아니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적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무엇이 남겨진 가족에게 이런 감정을 갖게 했을까


아버지의 일생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증거라고 할 정도였다. 해방이후 북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남으로 내려온 아버지, 충청도 출신의 엄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자신이 갖고 있던 돈에 대한 열정으로 끊임없이 고민했던 그. 하지만 그런 그 시절을 살던 한국의 아버지들의 일반적인 모습 뒤엔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바로 술, 술만 먹으면 주사를 부리고 심지어는 가족에게 심각한 행동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결코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울타리가 아닌 피하고 싶은 취객이었을 뿐이다. 이어 지나친 돈에 대한 집착과 자신은 외국에 나가야 할 팔자라며 기회만 되면 외국에 나간 탓에 가족과의 유대도 그리 공고하지 않았다. 그것도 베트남과 중동이라는, 명과 암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벌어온 아버지의 돈, 그것으로 가족들에겐 경제적 여유와 함께 아버지에 대한 괴리함도 함께 했다.


평생을 모아 마련한 집 한 채가 부동산 개발의 광풍에 휘말려 기회와 위기의 자락에서 오락가락 하는 그 순간 아버지에겐 인생 마지막 스트레스였던 모양이다. 어느날 단 한마디의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불귀의 객이 된 아버지, 그러나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애증과 회한의 대상으로 남고 말았던 모양이다. 어머니와 첫째 딸, 그리고 남동생이 전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이 아쉬움에 대한 토로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누구라도 저런 아버지였다면 그런 마음이 들 것도 같았겠다는 동조심이 든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긴 이메일이 전하는 메시지는 조금 다른 뉘앙스다.





이 영화의 연출자인 홍재희 감독은 자신의 치부일 수도 있는 가족사를 담담하게,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에게 결코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불편부당한 시각으로 전달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저 많고 많은 어느 한명의 아버지의 모습만이 아니라는 건 영화 중간중간 들어간 현대사의 이미지라든지, 굴곡된 모습이라든지 하는 갈등의 요지가 적지 않게 들어가 있어서다. 결국 갈등과 통합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의 경계선에 있는 지금의 한국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 모습이다.





시작은 엄청나게 벌어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어느덧 조금씩 그 간극이 좁혀져 가는 느낌이다. 혈연이라는,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실과 부모와는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며 반면교사가 되어 주는 것도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것들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며 벌써 15년이나 된 아버지의 부존재가 새삼 떠오른다. 나의 아버지는 나에겐 어떤 존재였을까 이메일은커녕 단 한통의 편지도 남겨놓지 않았던 그이지만 다음 세대에 남겨놓은 그림자라는 게 그저 유전자의 돌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아버지의 이메일 (2014)

My Father's Emails 
9.3
감독
홍재희
출연
김경순, 홍주희, 홍준용, 홍재희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0 분 | 2014-04-24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