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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즈다 - [리뷰] 자전거 한 뼘의 질주를 위하여

효준선생 2014. 6. 10. 07:30






   한 줄 소감 : 한 소녀로부터 시작된, 엄폐된 곳으로부터의 외침
 





같은 아시아 대륙에 속해 있으면서도 한국이 아랍을 보는 시각은 대개 서구의 그것과 유사하다.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 제3세계가 부각되고 그중에서도 아랍 국가들의 반미, 비러 성향이 강해지자 우리들까지도 아랍의 여러 나라를 보는 시각은 정치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한때는 중동 특수를 노리며 외화 벌이에 나섰던 적도 있던 아버지들 세대와는 다른 느낌이다. 신이 다스리는 나라, 폐쇄적인 통치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 사막과 석유로 이미지화 나라들. 그중에서도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이미지는 독특하다. 어쩌면 중동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 가장 원리주의적 성격이 강한데도 불구하고 미국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많이 개방되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그러나 영화 와즈다를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은 싹 가시고 말 것이다.





열 살 소녀 와즈다와 그의 엄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상다반사의 이야기들은 그들의 개인사를 다루지만 결국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권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엄마는 와즈다를 어렵사리 낳고는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 아들을 원하는 아빠는 이런 이유로 새 장가를 들겠다고 선언하고 중간에 낀 와즈다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교육을 담당한 학교는 더 이상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하거나 인재로 배양하는 기능을 갖기 못하고 있다. 그저 정숙한 여성이 되기 위한 과정, 혹은 신을 찬양하는 시간이 수업의 대부분이었다.





이 영화는 21세기 우리들의 시각만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구석들이 있다.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차별과 남존여비 사상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들이 디테일하며 구현되는 걸 보면 답답해진다. 가장 잘 알려진 검은 겉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얼굴까지 덮고 다닌다. 외간 남자와 접촉할 수 없는 건 불문가지다. 그러니 사회생활이라는 건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종래 중동 국가들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압수준의 차별을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어린 와즈다의 시각과 행동을 빌어 다소 거칠지만 유머러스하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청바지를 안에 입고, 스니커즈를 신고 다니고 불법 테이프를 복제한 것이지만 서구의 음악을 듣는다. 이런 행동이 아직은 체제에 순응하며 살았던 엄마와 학교의 눈에는 불편하고 거슬리지만 와즈다는 개의치 않는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알 수는 없다.





와즈다가 세상에 한 발 더 나가기 위한 동력으로 자전거는 좋은 사례가 된다. 동네 사는 압둘라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와즈다를 놀려 먹는다. 여기에 와즈다는 자기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선 자전거를 살 돈이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자전거를 타는 걸 용인하지 않는 그곳의 관습에 있다.


100여년 전 처음 조선 땅에 자전거가 들어왔을때 여자는 절대 탈 수 없는 망측한 것이라 여겼다. 다리를 벌려야만 앞으로 갈 수 있는 그 탈 것에 사람들은 이내 포기하고 말았고 자전거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여성들의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자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는 결국 여성들의 기승을 허락하고 만 셈이다. 와즈다에게 자전거는 이동수단이나 레저활동을 위한 도구가 아닌 그 자체가 여성들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저항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그 어렵다는 코란 암송대회에 나가서 일등을 한 것도 신에 대한 충정의 발로가 아니고 자전거를 사기 위한 상금에 더 목적이 있었다는 건 상징적이다. 상금을 받아 자전거를 살 수 있기도 하지만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코란은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겐 그저 암기용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한 부정도 결코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종교나 오래된 전통, 관습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일순간 불편하다고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바꿔 보려고 애를 쓰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도리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전용하고 말 것이다.





이 영화가 여성 상위시대를 부르짖는 몇몇에겐 불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와즈다와 엄마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름대로의 혁신을 이루는 장면을 보면 가슴 한 켠이 짜릿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 건 개명시대를 산다고 여기는 우리에게도 타인에 의해 억압받고 질곡에 갇혀 있는 요소가 주변에 산재해 있다. 옛것만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씩이라도 바꿀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그래서 더욱 유효하다.





사우디 아라비아 최초의 장편 영화, 그것도 여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로 유수의 해외영화제에서 여러 수상을 한 바 있다. 보고나면 동굴 같은 데 갇혀 있다가 한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곳으로 나가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와즈다가 대회에서 일등을 했을때 보다 자신의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며 짓는 웃음에서 자유와 행복의 가치를 읽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와즈다 (2014)

Wadjda 
10
감독
하이파 알-만수르
출연
와드 모하메드, 림 압둘라, 압둘라만 알고하니, 아드, 술탄 알 아사프
정보
드라마 |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 98 분 | 201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