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 - [리뷰] 넌 어느 별에서 왔니?

효준선생 2014. 6. 7. 07:30






   한 줄 소감 :  신화 전설이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으로 태어날 수 있다니...
 





한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온 가족들이 아이에게 덕담을 하고 축하를 해준다. 세상에 무사히 와 준 것에 대한 먼저 태어난 사람들의 인심이다. 태어났다가 죽는 날까지 한 평생을 살면서 후회같은 건 없이 산다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 전생과 내세가 있다고 믿는 다면 지금 이곳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다음 생을 다시 유지할 수 있으니 대충 살고 싶어질까 부모와 가족들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고 그들과 죽음을 통해 헤어지는 것도 인연이다. 삶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지만 그 과정은 매우 간단하다. 태어나 살다 죽는다는 것.





영화 가구야공주 이야기를 보면서 삼신할미(?)의 점지로 어느 노부부의 품으로 들어온 작은 여자아이가 사랑과 인생에 대해 던지는 삶의 화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생명체가 엄마의 뱃속이 아닌 물체에서 태어난다는 물생탄생(物生誕生)의 설화를 옮겨 그려낸 이 영화, 대나무 순에서 태어난 아주 작은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람스럽다.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자라 인격체로 성장하는 과정, 자연을 벗삼아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등 일반적인 아이들이 자라는 과정을 압축해야 보여주는 앞 부분에선 보는 내내 해맑은 미소를 짓게 한다. 하지만 어느새 성년의 모습을 갖게 된 그녀가 아버지의 의도대로 화려한 도시로 옮겨 벼락부자의 딸로 살아야 하는 중반부 이후는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더냐라는 설교에 치중한다.





친구들이 비온 뒤 빨리 자라는 대나무 죽순같다하여 다케노코(竹子)라 불리던 것을 빼면 변변한 호칭도 없었지만 나중에 찬란하게 빛난다는 의미의 가구야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름을 갖게 된다는 건 의무도 생긴다는 뜻이다. 어느덧 결혼 적령기가 된 그녀 앞에 세상 사람들은 천하 제일의 미녀라 하였고 일대 남자들은 앞다투어 구혼을 한다.





이때까지의 과정을 보니 마치 이 영화는 자유롭게 들판에서 뛰어놀던 시절, 여성성이 배제된 아이의 모습을 지나면 여성들에겐 혼인이 마치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질곡이 던져짐을 느끼게 된다. 땀 흘리는 일을 할리 없다며 눈썹을 밀고 헤픈 웃음을 지을리 없다며 치아에 검은 칠을 하는 것도 어쩌면 여성에겐 더 이상의 자유의지란 불필요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준다.





마치 신부수업을 받는 듯한 일련의 행동들, 자발적으로 기괴한 화장법을 선택한 그녀는 비록 어린 시절과는 다른, 한결 성숙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건 새 장에 갇힌 화려한 깃을 가진 애완조에 불과해 보였다. 남자들은 그런 가구야 공주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침을 흘리지만 화려한 미사여구 따위로 그녀의 마음을 사기엔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봉래산의 옥, 불쥐의 가죽옷, 용의 여의주, 부처의 돌그릇, 제비의 자패(紫貝)등에 비유한 그녀에 대한 찬미는 도리어 그걸 구해오지 않는 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다던 말도 아름다운 여성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남자들로서의 물질적 대가에 다름아니었다. 그런데 저런 보물들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다섯 명의 공자들이 실패를 거듭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마치 요즘 다이아몬드 반지와 값비싼 예물, 예단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결혼 세태를 연상케한다. 그리고 그런 게 과연 진정한 사랑의 징표라 할 수 있겠는가.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동네 오라버니를 그리워 하거나 현세의 삶이 가식적이라 느껴졌을때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세상에 올때도 그랬지만 세상을 떠나려 할때도 역시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구야 공주는 왜 이 세상에 왔고 그녀가 세상에 남겨놓은 것들은 무엇일까 그녀를 친딸 이상으로 아끼며 키워 준 양부모의 지성과 그녀가, 혹은 그녀를 사랑한다던 사람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남겨질까





지브리 영화의 흔적도 엿보이지만 엄청난 분량의 수채화 톤 그림의 연속으로 얻어낸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는 상당한 러닝타임을 갖고 있다. 정교하게 빈틈없이 채워 놓으며 캐릭터에 치중해왔던 기존의 만화에 메몰되어 있던 관객들에겐 어색할 법하다. 하지만 여백조차도 이야기가되는 이 영화를 보며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 이다. 





일본 헤이안 시대에 처음 소개된 설화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를 소재로 만든 이 영화는 소위 달의 여신이라는 가구야를 등장시키는데 전체적인 이야기 구도는 원본 설화와 거의 같다. 전체적으로 일본 색이 강렬하지만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영향을 받은 당시의 시대상 때문에 부처상이 등장하는 등 불교와 도교의 이미지도 찾아 볼 수 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가구야공주 이야기 (2014)

The Tale of Princess Kaguya 
7.3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
출연
아사쿠라 아키, 코라 켄고, 치이 타케오, 미야모토 노부코, 타카하타 아츠코
정보
애니메이션, 드라마, 판타지 | 일본 | 137 분 | 2014-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