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 [리뷰] 한때라도 뜨거웠던 때가 있었나

효준선생 2014. 6. 1. 07:30






   한 줄 소감 : 이 영화는 여행기가 아닌 젊은 날의 뜨거운 혁명가였다
 




타인의 행적을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루즈했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싸고 있고 외피다. 독일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이 영화엔 한때 무척이나 뜨거운 삶을 살았던 일군의 젊은이들의 혁명과 사랑을 내실로 담고 있다. 즉, 지난 20세기 중반 약 40년 동안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했던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의 억압에 맞서 레지스탕스를 꾸려 혁명을 기도했던 젊은이들 중의 한 명이 남긴 회고록이 이 영화를 시작하게 만든 도화선이 되었다.





스위스 베른의 어느 다리 위를 걷던 초로의 교사는 투신자살을 기도하는 한 여성을 구해준다. 그녀는 작은 책자와 외투를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교사는 그 책에 언급된 아마데우 드 프로도라는 인물에 대한 형용하기 어려운 호기심에 뒤도 안돌아 보고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맡긴다. 도대체 그 책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길래 그를 마치 자석에 끌리듯 리스본으로 불러들인 걸까





영화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책 한 권을 든 채 머나먼 이국 행을 결정한 남자와 그 책에 담긴 실제 인물들의 만남을 과거와 현재로 직조하며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신기한 건 그가 찾아낸 책 속의 인물들이 단 한명만 제외하고 모두 그의 눈앞에 등장해서 그 옛날 있었던 일들을 구술해준다는 점이며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마치 왜 이제야 자신들을 찾아왔냐는 듯했다.  





우선 포르투갈의 근 현대사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시대가 하수상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책은 씌여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위스의 현직 교사는 이 머나먼 여정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살라자르라는 인물을 찾아보았고, 그 자의 정치적 행보가 60년대 세계를 관통했던, 경제입국을 내세우며 권위주의적 통치를 밀어 붙였던 비슷한 유형의 정치가들의 이름들과 오버랩되었다. 그런 시절을 힘겨워 하던 열혈 청년들에겐 혁명이라는 단어는 삶 그 자체였고, 지식청년들을 위주로 결성된 조직은 거사를 도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가슴이 뜨거웠던 만큼 사랑에 대한 열정도 이들 사이를 헤집어 놓은 모양이다. 영화 후반부 스테파니라는 한 여성을 둘러싼 친구 간의 알력은 이들의 행동이 찻잔 속의 회오리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계기가 되고, 그 후일담이 전하는 씁쓸함은 리스본의 안개 낀 저녁거리의 모습과도 닮은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봤던 상황이 연출되었다. 멀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우리의 6~80년대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최루탄이 난무하고 소위 프락치라고 불리던 사복경찰의 눈을 피해 달아났던 윗세대 선배들의 모습들. 만약 그들이 지금 생존해서 그때의 일을 떠올린다면 아마 이 영화 속 인물들과 매우 흡사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이 영화엔 멘데즈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리스본의 도살자라는 별명처럼 독재 정권에 부역하던 끄나풀 형사나부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인물이 남긴 단서가 역설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자신을 고문하고 죽일 것처럼 쫒아왔던 그 날의 공포를 뒤로 한다면 지금은 그저 옛날 일이라고 웃고 넘길 수 있을까 목숨 걸고 혁명하자던 동지들을 더 이상 만날 수도 없게 된 처지에 놓은 그들. 누구는 변절이라 하고 누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라고도 했다.





이 영화 초반 투신자살을 기도했던 묘령의 여자의 신분이 밝혀지고, 등장인물 간의 묘한 인연이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돌고 돌아 다시 리스본 역에서 베른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남자, 이미 책 한권을 통해 과거의 인물과의 해후는 했지만 그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그에게도 뜨거웠던 어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저 한동안 잊고 지냈을 뿐이라는...(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책 한 권 빠져 먼 여행길을 선택할 수 있음이 놀랍고, 도통 책을 안읽는 요즘의 내가 부끄럽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2014)

Night Train to Lisbon 
9.1
감독
빌 어거스트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멜라니 로랑, 잭 휴스턴, 마르티나 게덱, 오거스트 디엘
정보
로맨스/멜로, 스릴러 | 스위스, 포르투갈 | 111 분 | 201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