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소감 : 이 영화는 여행기가 아닌 젊은 날의 뜨거운 혁명가였다 |
타인의 행적을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루즈했던 일상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싸고 있고 외피다. 독일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이 영화엔 한때 무척이나 뜨거운 삶을 살았던 일군의 젊은이들의 혁명과 사랑을 내실로 담고 있다. 즉, 지난 20세기 중반 약 40년 동안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했던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의 억압에 맞서 레지스탕스를 꾸려 혁명을 기도했던 젊은이들 중의 한 명이 남긴 회고록이 이 영화를 시작하게 만든 도화선이 되었다.
스위스 베른의 어느 다리 위를 걷던 초로의 교사는 투신자살을 기도하는 한 여성을 구해준다. 그녀는 작은 책자와 외투를 남기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교사는 그 책에 언급된 아마데우 드 프로도라는 인물에 대한 형용하기 어려운 호기심에 뒤도 안돌아 보고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맡긴다. 도대체 그 책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길래 그를 마치 자석에 끌리듯 리스본으로 불러들인 걸까
영화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책 한 권을 든 채 머나먼 이국 행을 결정한 남자와 그 책에 담긴 실제 인물들의 만남을 과거와 현재로 직조하며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신기한 건 그가 찾아낸 책 속의 인물들이 단 한명만 제외하고 모두 그의 눈앞에 등장해서 그 옛날 있었던 일들을 구술해준다는 점이며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마치 왜 이제야 자신들을 찾아왔냐는 듯했다.
우선 포르투갈의 근 현대사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시대가 하수상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 책은 씌여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스위스의 현직 교사는 이 머나먼 여정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살라자르라는 인물을 찾아보았고, 그 자의 정치적 행보가 60년대 세계를 관통했던, 경제입국을 내세우며 권위주의적 통치를 밀어 붙였던 비슷한 유형의 정치가들의 이름들과 오버랩되었다. 그런 시절을 힘겨워 하던 열혈 청년들에겐 혁명이라는 단어는 삶 그 자체였고, 지식청년들을 위주로 결성된 조직은 거사를 도모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가슴이 뜨거웠던 만큼 사랑에 대한 열정도 이들 사이를 헤집어 놓은 모양이다. 영화 후반부 스테파니라는 한 여성을 둘러싼 친구 간의 알력은 이들의 행동이 찻잔 속의 회오리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계기가 되고, 그 후일담이 전하는 씁쓸함은 리스본의 안개 낀 저녁거리의 모습과도 닮은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어디선가 많이 봤던 상황이 연출되었다. 멀게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우리의 6~80년대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최루탄이 난무하고 소위 프락치라고 불리던 사복경찰의 눈을 피해 달아났던 윗세대 선배들의 모습들. 만약 그들이 지금 생존해서 그때의 일을 떠올린다면 아마 이 영화 속 인물들과 매우 흡사한 반응을 보일 것 같다.
이 영화엔 멘데즈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리스본의 도살자라는 별명처럼 독재 정권에 부역하던 끄나풀 형사나부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인물이 남긴 단서가 역설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자신을 고문하고 죽일 것처럼 쫒아왔던 그 날의 공포를 뒤로 한다면 지금은 그저 옛날 일이라고 웃고 넘길 수 있을까 목숨 걸고 혁명하자던 동지들을 더 이상 만날 수도 없게 된 처지에 놓은 그들. 누구는 변절이라 하고 누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라고도 했다.
이 영화 초반 투신자살을 기도했던 묘령의 여자의 신분이 밝혀지고, 등장인물 간의 묘한 인연이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돌고 돌아 다시 리스본 역에서 베른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남자, 이미 책 한권을 통해 과거의 인물과의 해후는 했지만 그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그에게도 뜨거웠던 어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저 한동안 잊고 지냈을 뿐이라는...(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책 한 권 빠져 먼 여행길을 선택할 수 있음이 놀랍고, 도통 책을 안읽는 요즘의 내가 부끄럽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2014)
Night Train to Lisbon
- 감독
- 빌 어거스트
- 출연
- 제레미 아이언스, 멜라니 로랑, 잭 휴스턴, 마르티나 게덱, 오거스트 디엘
- 정보
- 로맨스/멜로, 스릴러 | 스위스, 포르투갈 | 111 분 | 2014-06-05
'소울충만 리뷰 > [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베스트 오퍼 - [리뷰] 어쩌면 사람이 그리웠는지도... (0) | 2014.06.03 |
---|---|
영화 로사 - [리뷰] 백조를 꿈꾸었던 소녀, 호수에 갇히다 (0) | 2014.06.02 |
영화 우는 남자 - [리뷰] 울지말아요, 미안해요 (0) | 2014.05.31 |
영화 그레이트 뷰티 - [리뷰] 이탈리아 미학의 민낯을 찾아 (0) | 2014.05.30 |
영화 밀리언 웨이즈 - [리뷰]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 (0) | 2014.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