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책도둑 - [리뷰] 독서는 가장 손쉽게 타인의 지식을 섭취하는 것

효준선생 2014. 5. 21. 09:30





    한 줄 소감 : 책은 단순히 글자의 모음이 아닌 오래된 정신을 담은 그릇이다
 





나치독일이 20세기 초중반 유럽 각국에 할퀴고 간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건물 파괴라든지, 상이용사의 상처라든지 하는 눈에 보이는 것 외에 자유를 속박당하고 오로지 한 사람의 이념이 만들어 놓은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다. 특히 패전국이면서도 여전히 짙은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는 전후 독일의 경우, 스스로의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지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도 결코 잊지 않으려는 노력을 동시에 해왔다.



 


70년이 다되는데도 여전히 수많은 나치독일에 대한 반성을 그린 영화들, 그 중엔 대표적으로 수난을 당했던 유태인들을 그린 홀로코스트 영화들도 있지만 자국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들도 많다. 영화 책 도둑 역시 후자에 속하는 영화지만 한 소녀의 눈으로 본 광기가 지배했던 시절, 감수성이 불안감과 섞이면서 드러나는 정서들이 이 영화의 주된 분위기였다.





어린 남동생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어느 중년 독일인 가정에 입양된 소녀, 다정한 양아버지와는 달리 무뚝뚝한 양어머니와의 관계가 껄끄러웠지만 그 전쟁 통에 학교도 다니고 이웃집 훈남 남자아이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행운이었다. 그들이 사는 작은 마을엔 붉은 나치깃발이 휘날리고 자신들의 선전물을 제외한 모든 서적을 마을 광장에 모아놓고 태우는 장면은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지금 방식으로 말하자면 비판적 언론에 대한 통제였다.





그 현장에서 우연히 주은 한권의 책이 소녀의 삶을 뒤바꿔 놓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삶에서 인간답게 사는 삶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소녀의 집에 어느날 유태인 총각이 몰래 들어오는 바람에 발각될까 긴장의 나날이 계속되고 전쟁이 심화될수록 이들 가족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끊이지 않는다.





히틀러라는 광적인 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당시 독일의 모습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는다. 대신 불쑥 나타나 불심검문을 한다든지 혹은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잡혀가는 유태인이나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아직 어린 소녀의 시선엔 그런 것들이 공포가 아닌 극복의 대상이라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만든 건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책을 읽으면서 자라나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들이다.





풍족하지 않은 삶, 죽을 수도 있다는 무서움, 그리고 같이 사는 유태인 총각에 대한 연민들을 관통하는 그녀의 책 읽기는 그래서 상당한 비중을 갖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 동네 책들은 이미 불타버렸음에도 소녀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도 우연치고는 행운인 셈이다. 영화 제목이 왜 책 도둑인지, 그리고 소녀가 책을 읽으면서 퍼트리는 희망의 바이러스는 어떤 모습으로 전파되는지가 이 영화의 결말을 인도하는 요소가 된다.





전쟁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시작이 되고 살상에 둔감해진다면 이성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에 반해 책 읽기라는 아주 고상한 취미가 바로 이 시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역설적인 것이다. 양아버지의 아코디언 역시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화의, 그리고 낭만의 상징인 셈이다. 소녀는 책을 읽고, 양아버지는 아코디언을 켜는 장면이 어쩌면 작가 마커스 주삭이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였겠구나 싶었다.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가진 우리에게 일제시대를 재조명하고 그 속에서 숨죽이고 살았던 민초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아쉬움이다.





요즘은 흔한게 책인지라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잘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세태지만 단 한줄의 명문(銘文)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영화 책 도둑이었다. 여자 주인공 리젤로 나오는 열다섯 소녀 소피 넬리스의 열연이 돋보인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책도둑

The Book Thief 
8.4
감독
브라이언 퍼시벌
출연
제프리 러시, 에밀리 왓슨, 소피 넬리스
정보
드라마, 전쟁 | 미국, 독일 | 131 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