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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간중독 - [리뷰] 결핍의 공허함이 사랑을 찾게 하다

효준선생 2014. 5. 8. 03:13






   한 줄 소감 : 헛헛한 시대 상황과 미쳐가는 듯한 애정행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다
 






베트남 파병은 한국 근현대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역사적으로 단 한번도 타국을 침범한 적이 없다던 한국사에 이질적인 상징으로 남아 있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그랬듯 파병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인명 살상의 행위는 그 대상이 베트콩이든 민간인이든을 막론하고 없었던 것이 나았던 아픔이다. 그 아픔의 대상은 그곳에 정주하고 살고 있던 베트남 사람들이든 아니면 타의에 의해, 혹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차라리 용병으로 가기를 원했던 우리 젊은이들의 아픔의 흔적들이다. 어린 시절 친척 아저씨의 손가락이 여의치 않음을 보고는 늘 궁금했다. 어른들은 그저 사고로 잃은 것이라 했지만 그 역시 파월 장병들이 훈장처럼 달고 있던 상흔의 기억이다.





1969년 한국, 베트남에서의 포성은 여태 멈추지 않았다. 몇몇 부대들은 순환 근무를 이유로 한국에 머물렀고 그들은 전쟁터에서 생존한 군인들이 그랬듯 외상후 스트레스라는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걸 잊기 위한 방법, 어쩌면 지독한 사랑에 매몰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인간중독은 바로 이 시점을 이야기한다.





고위 군 장성의 사위이자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며 사람들의 선망과 질시의 대상인 김진평 대령,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소 경박스럽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아내와 그를 마치 전쟁의 영웅시하는 부하들과 별 어려움 없이 지내는 중이다. 하지만 그에겐 전쟁터에서의 끔찍했던 살상의 장면이 기억 속에 각인되어 이따금씩 고통을 받는다. 이른바 섬망(譫妄) 증세다. 그런 그가 현실을 잊고자 나름 몸부림치던 때 그에게 다가온 한 마리 ‘파랑새’를 알게 된다. 자신과 생일이 같은 부하의 아내, 이 영화는 이렇게 파월 장교와 부하의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정행각, 다시 말해 불륜의 과정을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해서는 안될 두 남녀의 불편한 관계로만 볼 수는 없어 보인다. 시대를 관통하며 남겨진 현대사의 찌꺼기같은 시간들의 기억을 두 남녀가 나눈 일말의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희석해보려는 의도가 보인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는지, 예쁜 아내와 준수한 남편보다 왜 버거울 수 밖에 없는 관계의 외간남자, 외간여자에게 더 끌리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부족한 편이다. 대신 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결핍의 정서, 비록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일상을 보장받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의 사위라는 사실로 인정받을 뿐인 김 대령과, 한국에선 경계인인 화교의 딸이자 고아인 그녀에게 완정하지 못한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서로를 갈구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배경은 군 관사다. 사병들의 거소인 막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최소한 장교 이상이 독립된 가옥 안에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녀자들은 별도로 만들어진 미장원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리기도 하고 가끔은 조작된 사회활동을 하는 척도 한다. 자못 상류사회를 연상하지만 그들 역시 언제 다시금 전쟁터로 남편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다시 말해 그곳은 고립된 곳이다. 외부와의 연계나 별도의 장소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뮤직카페와 병원, 미장원 그리고 관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야외가 그들의 주 활동무대다. 서울에 일을 보러 갔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서울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단지 두 사람의 애정을 확인하는 마당을 마련해 주기 위해 각각의 배우자가 잠시 떠나있는 곳일 뿐이다.





이들에게서 삶의 즐거움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철저한 계급사회와 거기에 따라 아내들의 입지와 목소리도 정해지는 가당찮은 형편들, 당시 대통령과의 인연을 언급하며 세를 과시하는 허장성세만 그들을 포장해줄 뿐이다. 그들은 이렇게 고인 물에서 노니는 가여운 오리들이다. 주인이 먹을 것을 나눠주면 그걸로 먹고 살며 자신들끼리의 영역을 땅따먹기 하는 일상. 날지도 못하면서 천공을 바라볼 뿐이다. 





보지 못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면서 사랑을 외치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현실론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만나 격렬한 남녀관계를 맺기도 하지만 남는 건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남자와 비교적 현실 파악을 잘 하는 여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김 대령이 다시 동남아 전선으로 갔다는 설정도 이를 설명해 준다.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목숨도 담보되지 않는 그곳이야 말로 혼자만의 터질듯한 사랑으로도 채우지 못한 허전함을 달래줄 곳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다. 장면마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미술과 장치, 그리고 오브제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당시를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한 젊은 층에겐 분명 낯설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시대배경만 제외하면 그들의 사랑이 지금과 다른 건 아무 것도 없다. 이 영화는 사랑하지 못할 바엔 죽음도 불사할 수 있다는 한 남자의 서글픈 고백같은 이야기다.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그런 삶을 영위할 자신이 있을까를, 만약 당신이 여자라면 그런 사랑으로 들이미는 남자를 받아들일 자신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된다. 사랑은 그러고 보면 참 위태로운 것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송승헌의 대표작이라고 하기엔 그의 필모가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그의 영화였다





인간중독 (2014)

7.7
감독
김대우
출연
송승헌, 임지연, 조여정, 온주완, 유해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32 분 | 2014-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