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 - [리뷰] 투우사와 플라멩고 댄서, 그리고 눈물

효준선생 2014. 4. 28. 07:30






    한 줄 소감 : 백설공주의 이야기의 처연한 버전
 





영화 백설공주의 마지막 키스를 보기 전 일단 마음이 준비를 해야 한다. 다름이 아니라 이 영화는 흑백 영화에 무성 영화이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개봉했던 프랑스 영화 아티스트를 볼 때와 비슷한 감흥이 들텐데, 만약 이런 형식의 영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사전에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다소 난감해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성 영화 시절에 만든 영화가 아니라 최근 개봉작이다. 연출을 맡은 파블로 베르헤르는 이 영화를 무성영화 시절에 대한 오마주라 밝힌 바 있다. 영화의 형식은 다소 낯설지만 워낙 잘 알려진 컨텐츠이다 보니 금세 몰입해서 보게 될 것이다.





주인공은 카르멘이라 불린 스페인의 소녀지만 극 중 분위기를 일신시키며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캐릭터는 계모다. 아무래도 시대를 막론하고 새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는 않지만 극 중 계모는 심지어 자신의 남편에게까지 막 대하는 막장급 연기를 선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한때는 스페인 최고 인기 투우사인 아버지의 불의의 부상 때문이었다. 고도의 정신집중이 필요한 투우장에서 카메라 기사의 사소한 실수로 인해 방심하고 있던 투우사가 소에 받히는 사고가 일어나고 그걸로 투우사는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핏덩이인 카르멘을 낳다 죽고 이 두 사람은 새엄마의 손에서 거둬진다.





이후 스토리는 계모와 반신불수의 남편, 그리고 전처소생의 딸이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로 이어진다. 딸이 아니라 하녀로 막 일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 카르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불편한 아버지에게 투우사로서의 기술을 익히며 인생의 작은 불빛을 찾아가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다크하고 애잔하다. 사고와 엄마의 죽음이 없었다면 스페인 상류층에서 예쁜 옷을 입고 공주처럼 살았을 카르멘의 운명이었을텐데 그러질 못한 것이다. 그저 신세한탄만 하고 살 법하건만 천성이 낙천적이었던 소녀에게 희망은 결코 큰 곳에서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을 음해하기에 여념이 없는 계모의 거처를 벗어나 어느 숲속에서 쓰러진 자신을 거둬준 난장이들과 자신의 재주를 보여줄 난장이 투우단의 일원으로 나서고 세상 사람들은 과거 유명 투우사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를 환대한다.



 


카르멘이 숲 속에서 난장이들과 공동 생활을 하는 장면은 낭만적으로 그려진 것 같지는 않다.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난장이도 있는 반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난장이의 불편한 눈빛에 자주 삽입해 넣었다. 그들은 그녀를 카르멘이라는 이름이 아닌 백설공주라 칭하며 무대위로 올리곤 했지만 과연 순수한 마음의 발로였을까?





계모가 다시 등장하고 독 사과가 영화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는 순간 영화는 원작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리고 세상에 한 번 왔다가 즐겁게 살았어야 할 어린 소녀가 감당해야 할 아픔들은 그저 웃고 떠드는 그런 희화화가 아니라 세상은 어쩌면 생각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이 영화가 선택한 길이었다. 키스와 맞바꾼 건 갑작스런 소생이 아니라 한 줄 눈물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20년대 스페인의 모습이다. 흑백으로 처리했다는 것 말고도 등장인물의 의상이나 미술들이 거의 완벽한 수준에서 구현되었다. 그 외에도 결정적인 장면, 예를 들어 투우사가 소에 받히는 위험한 장면이라거나 계모의 마지막 장면 같은 부분에선 연극적 장치도 적극적으로 사용해냈다. 대사가 없는 대신 많지 않은 자막과 분위기를 끌어내는 음악들도 한 몫 해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