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한공주 - [리뷰] 얼마나 떼내고 싶었을까

효준선생 2014. 4. 19. 07:30






    한 줄 소감 :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한공주'들에게... 
 





어디서부터가 잘 못된 일일까? 왕따를 당하는 편의점 사장의 아들을 못 본 척했을 때 부터였나 아니면 친구랍시고 집에 들인 것 때문이었나 그것도 아니면 예전부터 깜박거리던 집 형광등을 제때 고치지 않아서 때문이었나. 이야기가 한껏 고조된 이후 닥칠 예상 가능한 놀라운 상황을 앞두고 마음 한켠이 급속도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영화 한공주, 이미 여러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입소문을 탔고 무비꼴라쥬라는 간판을 달고도 예외적으로 와이드 릴리즈 개봉을 한 상태다. 동명의 이름을 가진 그녀는 이제 고등학생이다. 원래 다니던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고 집이 아닌 “선생님의 어머니” 댁에서 기숙을 한다. 그러나 무슨 사연인지 그녀의 얼굴은 늘 어둡고, 반복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는 다양한 영화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겐 친절하지 않다. 초반 뚝뚝 끊기는 듯한 장면 편집과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점프 컷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그가 자주 착용하는 교복의 모양을 보고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구분하겠는가. 게다가 그녀가 수영을 배운다던가 혹은 카메라에 찍히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그게 단순히 현재의 그녀의 심리의 반영만은 아님을 깨닫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어릴 적 웬만한 집 여자아이들은 공주라 불렸던 걸 기억한다. 남자 아이들에게 왕자라고 잘 부르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공주라는 단어가 갖는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의 로망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커가면서 공주라는 단어가 그리 긍정적인 의미만 담기지 않았음을 직감하게 된다. 지금은 일진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만 예전엔 오공주니, 칠공주니 해서 좀 놀던 언니들을 일컫는 비칭단어였던 적도 있었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이 영화를 보기 전엔 그녀가 과거 가해자로서의 참회록 같은 걸까 싶은 추측도 해보았다.





그녀는 외롭다.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뒤 그녀는 사과와 보상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피해자였지만 오히려 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변의 일들은 오히려 그녀를 서서히 옭죄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긴장감은 바로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아직 기억에서 채 사라지지 않았던 일들, 아마 죽기 전까지는 평생을 이고 가야할 쓰라림이지만 그보다도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아무도 그녀 곁에서 보호막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부모의 난맥(亂脈)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 선생님과 선생님 어머니 역시 그저 멀뚱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방관자일 뿐이다.





새로 전학을 온 학교에서 그녀는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행이라고 여긴 건 이 영화에선 그 사건을 좀처럼 언급하지 않았던 초반의 얼키설키한 구성 탓도 있다. 이 영화는 최근 학원 영화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왕따 문제의 정중앙에 서있지는 않았기도 하다. 물론 왕따가 사건의 발단으로 작용을 하지만 한공주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새로 만난 친구들과의 만남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상황이 그렇게 되기라도 하면 불현듯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아직 어린 삶에 닥쳤던 정신적 고통을 슬기롭게 헤쳐 나오려고 했다면 절대로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곳곳에서 받게 된다. 도움은커녕 남만도 못한 부모에, 제 자식의 잘못은 돌아보지 않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행패,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마치 흉기처럼 사용하는데 무감각해진 아이들, 그녀를 둘러싼 이런 장막 안에서 그녀가 다시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녀가 왜 동영상 찍히는 걸 극도로 회피했는지, 그리고 왜 죽기 살기로 수영을 배우려고 한 것인지 마치 퍼즐 하나를 오른쪽 하단 구석에 두고 나머지 퍼즐을 꿰맞추는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퍼즐 개수가 999였는데 알고 보니 이미 놓여진 하나의 퍼즐 자체가 잘 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분은 어떨까 이 영화의 주인공 한공주의 마음과 같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배우 천우희를 위한 영화다. 비록 큰 규모 영화의 타이틀 롤은 아니지만 단독 주연으로 포스터 전면을 차지하는 그녀의 사슴같은 눈망울을 보니 그동안 험한(?) 연기를 많이 해온 그녀에겐 이 영화가 배우로선 큰 선물이자 격려가 될 것 같다. 그녀의 건승을 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한공주 (2014)

Han Gong-ju 
9.4
감독
이수진
출연
천우희, 정인선, 김소영, 이영란, 권범택
정보
드라마 | 한국 | 112 분 | 201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