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은밀한 가족 - [리뷰] 봉인을 해제하자 급기야 터지고 만다

효준선생 2014. 4. 3. 11:30






   한 줄 소감 : 정적인 시퀀스안을 헤집어 놓는 강렬한 폭력, 가족이 아닌 사회이자 국가다   
 




어느 국가가 주는 이미지라는 건 독특하다. 특히 크게 부각되지 않는 나라일수록 그 나라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은 고착화되기 마련인데 2008년 이전 그리스가 그런 나라들 중의 하나였다. 여전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 같고 그때 남겨진 오래된 건축물을 통해 관광수입을 얻으며 나름 행복하게 살 것 같은 나라. 하지만 금융위기가 그리스를 강타한 이후 그리스를 보는 시각이 꽤나 달라졌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이 물갈이되고 우리가 그랬듯 IMF의 그물 안에서 허덕이는 나라. 연일 계속되는 시위로 정국마저 위태롭고 그 후유증이 여전한 나라. 이런 인상 속에서 유난히 긴 이름을 가진 그들, 국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걱정과 궁금증.





영화 은밀한 가족은 이렇듯 백척간두에 서 있는 그리스의 위기를 어느 모형화된 가정을 내세워 시연하고 있다. 원 제목이 폭력녀인 것처럼 이 영화는 가정 폭력이 난무한다. 하지만 그 폭력이 겉으로 들어나는 핏빛 상처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파고 들어 살 속으로 곪아드는 형상을 하고 있다. 무섭다기 보다 살벌하다. 폭력의 始原은 할아버지다. 60세 전후의 그는 아내와 큰딸, 둘째딸, 그리고 큰 딸의 소생인 세 아이들과 살고 있다. 영화는 큰 딸의 장녀인 올해 11살 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마치 무척이나 단란해 보이는 그 파티의 뒷 켠에서 그날의 주인공인 아이는 소리없이 베란다에서 뛰어 내린다.





느닷없는 자살로 시작된 그 집안의 불행은 아이의 돌연사로 그치지 않는다. 아이의 죽음으로 복지부의 감찰이 들어오고 조부모와 죽은 아이의 엄마는 조사를 받는다. 하지만 가족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집에서는 아무 일도 없다며 함구한다. 이내 잠잠할 것 같았던 그 집의 분위기는 남아있는 구성원의 도발적인 폭력의 재발을 보여주고 극한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는 마치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적인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가족들, 대개는 여성이다. 아직 어린 남자 아이가 있지만 자기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성적이 안나왔다는 이유로 어린 여동생에게 뺨을 얻어맞아야 했다. 가족간의 이따금씩 터져나오는 주먹 세례는 예사지만 결코 반항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보다 윗 사람이 주문하며 마치 얼음 땡이라도 된 듯 꼼짝하지 못하고 날아오는 폭력에 순응한다.





당연히 보는 내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학교라는 배경이 등장하고 학교 선생과 심지어 외부에서 복지부 직원까지 내방을 해서 집안을 샅샅이 훑어보지만 그들은 외부에 도움조차 청하지 않는다. 보복이 두려워 진 것이다. 가족간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영화의 시선은 결코 한 가정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딸로 시작되는 추악한 매춘이 놓여있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가족들, 할아버지가 계약직으로 근근이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겐 그의 지시가 법인 셈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약한 이 집의 여성들에겐 말 못한 고민이 있고 그 후유증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능욕을 이겨내지 못하는 수치감에 이른다. 여기에 도달하면 과연 그리스의 상황이 얼마나 혹독했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그리스의 신예감독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는 구체적으로 이 영화 제작의도를 밝혔다. “이 영화는 현재의 그리스의 모습이다. 아무도 반항하려 하지 않고 그리스를 떠나려고도 하지 않는다.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은 잘못을 반복하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순응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마치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어쩌면 그리스와 비슷한 시기에 마찬가지로 금융위기를 겪은 바 있었던 이탈리아에겐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 보다 이른 시기에 IMF체제를 당해야 했던 우리는 말할 것도 없다. 폭력의 굴레 안에 갇힌 채 말이 없었던 그들이 선택한 마지막 한 컷은 이 영화를 놀랍도록 무서운 영화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