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가시 - [리뷰] 그녀에게서 내 남자의 향기가 난다

효준선생 2014. 4. 3. 07:09






   한 줄 소감 : 사랑이 아닌 결핍에서 오는 집착, 정말 무섭다. 올해 최고의 한국형 스릴러 영화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 타원형을 이룬 엉덩이 라인,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어대는 이팔청춘에게는 싱그럽다는 표현이 가장 어울린다. 여전히 교복을 입고 있지만 봄이 되면 그녀들에겐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학교 안에서 보내는 탓인지라 간혹 남자 선생님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기심을 대리 충족시키기도 한다. 모 여고에 재학중인 영은이 바로 그런 케이스인 줄로 알았다.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 선생님 앞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그녀가 보인 행동들, 예를 들어 높은 다이빙대에서 뛰어 내리거나 피구를 하다 넘어지는 척하거나 선생님 등에 짓궂은 스티커를 붙이거나 딸기우유를 사달라고 조르는 등. 성(性)적 텐션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됨에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 학교 체육선생인 준기는 그런 행동들이 그녀의 의도적인 접근인 것을 몰랐다. 아니 알고도 모른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 가시는 여고생의 남자 선생님에 대한 집착이 점점 고조되는 과정을 통해 애정 결핍의 정서가 타인에게 끼치는 해악에 대해 말하고 있는 미스테리 멜로 드라마다. 장르를 복합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특정 장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한꺼번에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릴러와 호러에 가까운 경악과 액션과 찐한 에로의 분위기까지 온갖 장르를 넘나들며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려고 애를 썼다.





이 영화는 아무래도 주동자의 입장에 선 한 여학생의 눈과 수동적 입장을 견지할 수 밖에 없는 성인들의 애매한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극단적인 결말까지 이르는 동안 한 템포만 쉬어 같으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하건만 이들의 난행(亂行)은 질주를 선택한다. 그만큼 숨이 턱턱 막힌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선생님의 눈에 들기 위해 인위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막무가내로 대시하는 여학생 영은의 행동에, 후반부는 주요 인물들이 서로의 관계에 대해 인지한 뒤 밀어붙이는 각종 사건과 끝내기 한방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연결 고리에는 왜 이 여학생은 사랑 따위는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렇게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게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손톱을 물어뜯거나 타인에 대해 잘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혹시 어릴 적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애정이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랐냐고 묻곤 한다. 분명 실례되는 언사지만 일정 부분 사실이다. 성장과정을 연구하는 행동 심리학에서도 이 부분이 나온다. 그렇다고 영은을 이 범주에 쉽게 몰아넣고 재단하는 것도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그녀의 개인사적인 이야기는 단 한 컷 등장한다. 고급 맨션에서 혼자지내는 그녀에겐 아픔이 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자발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대안으로 학교 선생님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효과적이지 못한 것 뿐이다.





남자 선생의 입장은 좀 난감하다. 장인이 마련해 준 학교 선생 자리를 놓고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한 편은 아니다. 만삭인 아내와의 관계는 원만하지만 아직 젊고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녀의 풋풋함을 거절하기엔 아직은 역부족이다. 어느 비오는 날의 스치는 듯한 해프닝은 그를 곤경에 빠트리는 계기가 되고 마치 달콤한 설탕물에 파리 달라붙듯 하는 영은에게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결정적 실수는 이 모든 걸 애초 해서는 안되는 불법 사행성 게임처럼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분명 이 과정에서 한 번 정도 매듭을 지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럴 기회는 충분하게 있었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라"는 고답적인 방어만으로도 가능할텐데 그러지도 못했고 그저 한마디 던진다는 게 영은으로 하여금 자신에게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자의적 판단을 하는데 혼동을 주었을 뿐이다. 준기 역시 영은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기에 그렇게 했다고 보기엔 주변 여건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관객들이 그렇게 판단하는 건 아내의 상상력이 만들어 놓은 설정이 과도하게 인입된 결과였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영은의 손목을 으스러질 정도로 잡아 준 것도 그저 사람의 도리라고 봤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 사연이 담긴 빨간 체육복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서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건 마치 폭풍이 지나 간 뒤 무사함을 확인하고 난 뒤의 애틋함 정도로 보인다.





순수했던 여학생의 미묘한 눈빛에서 뒤로 갈수록 사이코 패스에 버금가는 눈빛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연기한 신예 조보아의 매력이 당차고 애매한 스탠스를 유지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육선생으로 나온 장혁의 감기는 듯한 연기가 묘한 앙상블을 만들어 낸다. 급하게 몰아붙이는 후반부에 다소 언매치한 설정들이 옥의 티지만 심리적으로 상당히 복잡다단한 캐릭터들을 장시간동안 이끌어 감에도 잘짜놓은 스릴러물의 모양새를 뽐낸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영은은 구원받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모진 생각도 하게 만든다. 





가시 (2014)

8.8
감독
김태균
출연
장혁, 조보아, 선우선, 이도아
정보
스릴러, 로맨스/멜로 | 한국 | 201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