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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주정 - [리뷰] 동 시대를 아파하는 어느 시네아스트의 당부

효준선생 2014. 3. 25. 07:01





    한 줄 소감 : 폭력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지만 오히려 짠하다
 





 압축성장의 후유증 그리고 지아장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압축성장은 전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다. 개혁개방의 기치를 높이 치켜든 중국에선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그 어떤 자본주의 국가의 그것과도 견줄 수 없는 형태로 사유재산을 인정해 왔다. 애초부터 상업적 마인드가 출중했던 중국인들로서는 남보다 먼저 부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쳐왔고 그 결과 부익부 빈익빈의 좋지 못한 결과도 나왔다. 이젠 정치적 이념이 아닌 돈의 종속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중국 감독 지아장커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중국 각지의 소외된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잘 알려진 장이머우, 천카이거등의 뒤를 이어 소위 중국의 제 6세대 감독군으로 꼽히는 그는 다른 비슷한 연배들보다 늦게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그를 주목한 건 다름이 아니라 그의 영화가 늘 중국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신경을 쓰고 있다. 외국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상당히 많이 한 편임에도 그의 영화는 중국 현지에선 극장 상영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다른 감독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주의 영화나 사극, 혹은 홍콩 자본을 끌여들여 블록 버스터 영화제작에 매달리지만 지아장커는 극장 상영여부가 불투명한 사회파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 제작 영화인 <소무>, <플랫폼>,<세계>,<무용>,<스틸 라이프>,<24시티>등의 포인트는 유명 배우들에 의해 끌고 나가는 말랑한 내러티브가 아니다.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덜 숙성된 ‘그곳’의 모습을 거칠게 묘사하고 등장인물들은 그곳에서 상처를 받고 힘겨워 한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그 농도가 심해졌고 중국 당국의 검열의 눈초리도 역시 매서워졌다. 이때 나온 최신작 영화 천주정은 비록 칸 영화제 부문상 수상작임에도 여태 개봉이 안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먼저 상영이 되긴 하지만 이런 피할 수 상황이 오히려 그의 국외적 성가를 더 높이는 아이러니가 되는 셈이다.







 사회고발인가 통렬한 자기 반성인가



영화 천주정의 제목은 ‘하늘이 정해준 대로’ 라는 뜻이다. 다소 수동적인 의미로 인명은 재천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을 보면 과연 하늘이 정해준 대로의 삶을 사는 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역동적이다. 많은 부분이 속박된 사회, 그 와중에서도 돈을 향해 열심히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경제구조에서 일반 서민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인다. 모두가 평등하자던 선동적 이데올로기로 어린 시절 교육을 받았지만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 소학교 동창은 무슨 재주로 돈을 벌고 잘나가는 재벌 총수가 되고 다른 친구는 하청으로 받기로 한 돈 몇푼에 굴욕을 당해야 하는 신세다. 또 가난한 시골 농촌의 아들로 노모와 가족들을 봉양해야 하는 중년,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받아야 하는 각종 수모와 멸시, 돈 앞에선 사랑이나 미래도 저당잡혀야 하는 젊은 세대들의 불확실한 오늘이 이 영화엔 옴니버스 구조로 담겨있다.





각각 30여분의 분량으로 모두 4편의 이야기가 포진되어 있지만 이야기가 끊긴 건 아니다. 매 작품에 잠시 등장했던 인물이 다음 편의 주인공이 되고 첫 번째 언급된 기업이 마지막 작품에선 배경으로 나오는 등 구성과 편집에도 신경을 많은 쓴 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가 칸에서 각본상을 받지 않았나 싶다. 특이한 점은 3번째 이야기에서 발맛사지 숍 데스크 여직원으로 나오는 여배우 자오타오는 바로 감독인 지아장커의 실제 아내이자 그의 영화에 매번 등장했던 이른바 페르소나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감독의 고향인 산서성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각색했다. 광부로 그 지역 유지이자 재벌의 돈줄 역할을 하는 촌장과 회계와 맞서는 중년의 남자. 그에겐 조직이나 권력은 없어도 둔탁한 사냥총이 있다. 모두 6명이 그의 결심에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지만 그는 그게 그들의 운명이라 굳게 믿는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영화 깜짝 놀랄 오프닝을 장식한 중경의 한 30대 가장이다. 날품팔이로 전국을 떠돌며 돈을 벌어 시골에 보내지만 고향에선 늘 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노모의 생일잔치에 그리 많은 돈을 쓰고도 당당하게 동생에게 돈을 더 내놓라는 형과 투정부리는 아내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그에게도 역시 권총이라는 무기가 최후의 수단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호남성 출신의 한 발맛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여자 종업원의 이야기다. 불륜남이 있지만 결혼을 강요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삶을 살고 있다. 어느날 업소로 찾아온 두 명의 손님과 말다툼 끝에 일을 저지르곤 자신만의 길로 간다. 마지막 이야기는 광동성에 운집한 젊은 노동인력의 이야기를 다룬다. 역시 시골 출신인 남자는 공장과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내일을 알 수 없는 삶을 영위하고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 미래를 계획해 보지만 여자가 실토하는 충격적인 말에 결단을 하고 만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4개의 에피소드들은 최근 중국에서 실제 벌어진 일들을 각색해서 드라마처럼 만든 것들이다. 그럴만도 하다 싶지만 총기사고가 난무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정말 너무 쉽게 연출되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타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 돈이면 자신이 하고픈 일은 무엇이든 할 수있다고 믿는 저렴한 자본천민주의가 고스란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폭력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그리고 세상을 응징하려는 시도가 불편해 보이면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건 바다 건너 어느 관객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모두가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응어리진 마음을 해소해서는 안될 테지만 이미 곪아터져 버린 환부를 도려내는 마음으로라도 이 영화는 해결책을 모색해달라고 요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비단 중국의 어두운 면만이라고 할 건 없다. 한국에서도 못지않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저 영화 소재로 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파 영화들이 세상을 자극해야 자이로스코프처럼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돈이나 권력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면 그 사회는 넘어지고 말 것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가난한 아버지의 총구는 어딜 향하는 걸까








천주정 (2014)

A Touch of Sin 
9.4
감독
지아 장커
출연
강무, 왕보강, 자오 타오, 나람산, 장가역
정보
드라마 | 중국, 일본 | 130 분 | 2014-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