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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 [리뷰] 왕년에 한참 날렸던 때를 회상하다

효준선생 2014. 3. 26. 07:15






   한 줄 소감 : 강한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웨스 앤더슨의 미학




초로의 노인이 썰렁한 호텔 로비에서 중년의 남자를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내용인 즉 왕년에 한 가닥 하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한 세대 전 그러니까 이야기를 듣는 시점에서 따지면 50여 년 전 이야기다. 무엇이 그렇게 그 옛날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싶었을까 가난한 전쟁고아로 호텔 로비보이로 시작해 지금은 어엿한 호텔 소유주가 된 사연이라면 들어줄 만한 자수성가 성공기가 아닐까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직 거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좀 이른 명성이지만 전작들을 본 영화 팬들이라면 그의 이름만 보고도 대충 어떤 때깔의 영화일 것이라고 예측할 만하다. 그만큼 자신만의 성향을 듬뿍 담은 영화를 고집하는 그에게 우선 컬러는 빼놓을 수 없다. 시작부터 시선을 압도하는 총천연색의 원색 퍼레이드, 특히 그린과 레드 계열의 색감을 유감없이 풀어놓은 그의 미술적 감각은 한번 보면 충분히 각인시킬만하다. 이번 영화는 시대적 차이를 두고 내러티브가 전개되는 탓에 30년대, 60년대 그리고 80년대의 분위기 차이를 배우들의 의상이나 패션을 통해서도 구현했지만 소위 “바랜 색감”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 했다.






 약소국, 이민자 출신의 서러움



영화의 줄거리는 크게 복잡하지는 않다. 하지만 미리 알고 보지 않는다면 3중 액자 식 구조에 적지 않은 명성을 지닌 배우들이 각각의 역할에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연기를 하는 통에 그 또한 혼란을 겪기 십상이다. 과거 회상으로 돌아가 나이 많은 호텔 여주인이 타살로 의심되는 죽음을 당하자 그 유산을 둘러싸고 상속자인 아들과 그가 고용한 킬러들, 그리고 호텔 컨시어지와 로비보이가 신경전을 벌이다 승패를 가르는 내용이다. 그 와중에 범죄 수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등장하는 경찰, 그리고 그 시대상을 반영하는 군인들이 분위기를 험악하게 이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시대적 배경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호텔은 가상의 왕국 주브로브카는 알프스 산자락 끝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오스트리아와 동유럽 국가 어디쯤이다. 그렇게 유추할 수밖에 없는 건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고향이 바로 오스트리아다. 한때는 유럽을 호령하던 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가 국세가 쪼그라들어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끼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만신창이가 되던 시점, 그의 소설 속 시선은 고국에 대한 부흥의 열망이 담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엔딩 타이틀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 줄 적어 놓았다. 비록 이웃국가 헝가리의 수도 이름을 차용했지만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는 오스트리아 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외에도 호텔 소유주인 마담 D로 나오는 틸다 스윈튼의 의상도 오스트리아 궁정 의상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한 것들이다.






시대정신의 반영일까?



이렇게 화려했던 제국의 쓸쓸한 퇴장과 함께 유럽국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나치와 파시즘은 열차에 올라타 괜히 유색인종이자 이민자 출신의 로비보이를 괴롭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심지어 임시 여행 허가증마저 무시하며 기차 안을 일순 공포로 몰아넣자 그들은 외친다. “이런 죽일 파시스트들 같은 이라구” 하지만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호텔과 마담D의 저택에 비해 감옥은 또 하나의 세상이었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어 그곳에 들어앉게 되는 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저 마담D의 죽음에 호텔 컨시어지 구스타프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으로 수감된다. 제대로 된 법정다툼도 없고 얼마 동안 그곳에 있어야 하는 지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른바 공포정치다.





죽음, 상속을 둘러싼 치열한 쟁탈전, 그리고 수감과 탈옥, 추격이라는 상당히 무거운 소재를 들고 나오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발랄한 편이다. 심지어 살인 장면에서 조차 블랙 유머스러운 장면을 끼워 넣었다.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놀란 뒤 그제서야 떠올랐다. 이 영화가 19금 영화였다는 사실을. 내둥 원색에 가까운 컬러풀한 미쟝센에 현혹되어 그걸 잠깐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들자면 설산위에서 도구들을 이용해 킬러를 쫒는 장면이었다. 당시에 있을 리 없었을 지금의 스켈레톤이 등장하며 마치 동계 올림픽 활강 종목을 보여주며 이들이 다른 호텔 지배인들에게 전화를 걸며 도움을 청하자 서로가 릴레이를 하듯 전화기를 돌리는 장면을 꼽고 싶다. 백척간두의 급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일종의 윤활제인 셈이다.





한 남자의 왕년은 이렇게 마무리된 모양이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면접에서 시작된 이 두 사람의 인연이 두 세대 정도의 시간을 통해 약속이 성사된는 과정, 그리고 참 별 것도 아닌 듯한 상황 설정에서도 좀처럼 바로 앞에 놓일 장면들을 섣불리 추측하지 못하게 하는 의외성이 맞물려 재미를 준다.






 영화가 끝나고 침전되는 이미지의 향연



사람들의 입소문 그대로 이 영화가 주는 독특한 매력은 솔직히 생소할 수도 있다. 장면 몇 개만 떼어 놓고 보면 실험미술을 보듯 아방가르드 해 보인다. 줄거리도 크게 모나지 않고 액션이 기가 막힌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감독 이름을 다시 한 번 혀끝에서 굴려보게 될 것이고 차기작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될 것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The Grand Budapest Hotel 
8.3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토니 레볼로리, 시얼샤 로넌, 애드리언 브로디
정보
미스터리, 어드벤처 | 미국, 독일 | 100 분 | 2014-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