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탐욕의 제국 - [리뷰] 사람이 우선이다

효준선생 2014. 3. 3. 07:30





   한 줄 소감 : 지난 일에 대한 회고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경계로 삼아야 할듯
 





개 설탕 가게에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에서 그 이름을 날리는 재벌이 되었다.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으며 형제, 누이, 그것도 모자라 사돈까지 끌어들여 직계, 방계회사를 차려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가는 회사. 사회진출을 앞둔 취업지망생들에겐 1순위로 꼽히고 매년 채용시험에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투하된다는 그곳. 볕이 길면 그림자 역시 긴 법.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을 뿐이라지만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지경이라면 무슨 사연인지 목소리라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달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여성 공장 노동자의 죽음을 극화한 작품이라면 영화 탐욕의 제국은 실상 그대로를 전달한 다큐멘터리다. 그런 이유로 다소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지만 결기와 분투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건 연출자의 목소리만이 아닌 제 생명을 걸고 절대로 물러서거나 깨질 것 같지 않는 거대 재벌 앞에서 외치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갓 성인이 된 그녀들, 꽃다운 나이에 멋 부리며 하이힐 신고 사무직으로 근무하지는 못할망정, 흰색 방진복에 감춰져 눈만 내놓은 채 각종 화학물질이 날아다니는 공간에서 청춘을 다 바쳤다. 남들 부러워하는 회사 간판에 남들 보다 조금 더 챙겨주는 월급 탓에 섣불리 그만두지 못한 채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근무했던 우리 회사가 이젠 등을 돌리다 못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나섰다. 서러웠을 것이다. 두려웠을 것이다. 저 멀지 않은 곳에서 동료를,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것 같은 死神의 검은 그림자보다 무서웠던 건 제발 회사의 잘못을 인정하고 병들고 무너져가는 자신들을 봐달라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는 회사의 처사였을 것이다.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관계기관도 찾아 나섰지만 그들도 싸늘하게 외면하고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결코 약자에게 호의적일 수 없는 그들 서로간의 커넥션들. 영화를 보면서 분노가 생긴 부분은 이들이 회사 앞에서 농성을 하고 심지어 운구차량마저도 막아서는 용역과 경찰을 보면서였다. 저들은 무슨 권한으로 저러는 걸까 세상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말이 있건만, 마지막 가는 길마저 들끓는 심정으로 보내려고 하는 저들은 그저 회장이라는 사람이 넣어주는 녹봉 때문에 저러는 걸까





한이 쌓이고 쌓이면 하늘은 반응한다고 했다. 이승에서 벌인 업보를 다 어찌 짊어지고 가려는지 모르겠다. 죽으면 호화로운 묘지에 묻힐지언정,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왜 모르는 걸까 누군가의 원망과 회한만을 잔뜩 이고 갈테인가. 출장길에 교통사고가 나도 산재처리를 해주고 같은 회사직원이 많이 아프다면 설사 자기 부서직원이 아니더라도 문병을 가는 게 우리네 상휼(相恤)이 아니던가 하물며 회사 주머니 채워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 죽음에 이른 직원들이 속출하는 상황 앞에서 사업장 환경이 환자발생과 확실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는 몇몇 의사들의 설명만으로 나몰라라 한다는 사실이 최고 부자 회사일망정 최고 좋은 회사는 아님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적지 않은 환자들이 한 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불편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서 섰다.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기적처럼 회사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그렇게 원하던 회사로부터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산재처리를 얻어낸다고 해도 그들의 아픈 마음은 달래줄 길이 없어 보였다. 지금도 이들 말고도 수많은 직원들이 같은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저 운 나쁜 선배들의 푸념만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산업계의 쌀이라는 칭호를 받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는 물질을 저감하기 위한 회사 차원의 노력을 이끌어 내는데 목소리를 낼 것인가. 지금도 시계의 초바늘은 흘러간다.





영화 엔딩에 어느 여고의 졸업식이 나왔다. 아무런 대사도 나레이션도 없다. 여학생들의 해맑게 웃는 모습, 그런 아이들을 대견스럽게 지켜보는 부모들의 모습과 이미 생떼같은 자식들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부모들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영화가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기업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한 연출자와 영화 관계자들의 용단에 박수쳐줘야 마땅할 것이며 이 이야기가 수백 년 전 조선시대의 한때 이야기가 아니라 몇 년 전, 아니 앞으로도 반복될지 모르는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사회적 환기가 필요하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탐욕의 제국 (2014)

The Empire of Sh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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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홍리경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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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2 분 | 201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