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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바논 감정 - [리뷰] 사적 영역에 끼어든 타인에 대한 반응

효준선생 2014. 2. 24. 12:00






   한 줄 소감 : 낯선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를 증명하려고 애쓰다.
 





람은 타인과의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자유를 느끼는 존재라고 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없다면 그에게 자유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한다. 자유를 느끼는 건 관계의 형성이라는 말인데 우린 일상에서 얼마만큼의 관계를 맺고 살고 있을까





부모 자식사이, 친구 사이, 부부사이, 그리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맺게 되면 무수한 알음알음의 관계들. 개중엔 맺기 싫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를테면 관계인 셈이다. 이런 관계가 때로는 기쁨을 나눌 사이로, 혹은 두려움을 느끼는 사이로 이뤄지기도 한다. 개중엔 맺기 싫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를테면 관계인 셈이다. 영화 레바논 감정은 바로 이런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영화에선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인연들이 여럿 나온다. 누군가로 인해 마음이 상처를 안고 살고 누군가로 인해 고통의 나날이 되기도 한다. 연민의 정이라든지, 혹은 육욕의 발산같은 것들도 그저 스치는 바람 같은 걸로 알았지만 지독한 관계의 이어짐은 이 영화에선 소스라칠 정도의 폭력과 맞닿아 있다.





이 영화를 스릴러라 할 만한 건 가죽 옷을 입은 한 남자의 집요한 추격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인 동영상을 몰래 파는 정도의 일을 하는 걸로 나오지만 그보다는 난폭성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기분나쁘다는 이유로 사람 얼굴에 라이터 기름을 뿌리고는 라이터를 들이대거나 소화기로 머리를 강타하고 자동차 바퀴로 팔을 짓눌러 버리는 등의 행패엔 사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 그가 찾아다니는 한 여자의 등장은 보호본능과 더불어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이일까를 궁금하게 한다.





어머니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여태껏 헛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남자, 헌우. 춘천에 있는 선배의 집을 잠시 빌어 기거하지만 딱히 하는 일도 없다.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산에서 덫에 발목이 낀 여자를 구해주고 집으로 데리고 간 걸 계기로 잠시 사람과의 연을 만들어간다. 이렇게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도와주고 싶은, 피하고 싶은, 그리고 잡고 싶은 관계로 얽매인다. 어떤 관계라고 정의할 수도, 어떤 사이였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이런 관계들, 다가서기도 혹은 멀리하기도 애매한 사이 이때 느끼는 감정을 레바논 감정이라 부른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사람은 도대체 제목은 무슨 의미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엔딩 타이틀에 제목과 관련 최정례 시인의 동명 詩題를 영화의 제목으로 삼았다는 언질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은 커녕, 대사 한마디에도 언급조차 되지 않는, 그렇다고 백과사전에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로도 존재하지 않는 이 영화에 대해, 모호한 눈빛을 견지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인구에 회자되면서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오늘 영화 보면서 뭔지 모를 느낌을 받았다. 아마 레바논 감정 같은 거. 언어는 사회구성원들이 자주 쓰면 보편성을 얻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 단어 입에 자꾸 맴돈다.





남자가 여자에게 이름을 묻는다. 하지만 “언제 다시 볼지 모르면서 이름은 뭐하러 물어요.” 라고 시큰둥하며 대답한다. 아마 이들에겐 이름을 주고 받으면 상대를 인식하는 건 몸을 나누며 서로를 탐닉하는 그 이상의 행위였을 것 같다. 큰 부상을 입고 너절해진 채로 남자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알려 주지는 않는 관계. 아마 요즘 관계맺기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겨울 산이 주는 분위기는 음산하다. 인적이 드문 그곳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은 건 모호성을 배가하는 기폭장치가 된다. 설원, 그리고 숲 속, 무엇이 인물들을 위협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자연도, 인간도 마치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사나운 짐승의 식욕처럼 다가온다. 주변이 온통 눈밭이다. 하지만 산 속을 벗어나면 바로 공사판이다. 이질적인 두 개의 공간이 맞닿아 있고 그 사이를 분주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늘하게 펼쳐지는 영화 레바논 감정, 어떤 감정인지 직접 느껴보시라.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레바논 감정 (2014)

Lebanon Emotion 
9.7
감독
정영헌
출연
최성호, 김진욱, 장원영, 김재구, 조석현
정보
스릴러, 드라마, 로맨스/멜로 | 한국 | 106 분 | 2014-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