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 [리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햇던 소녀

효준선생 2014. 2. 11. 07:30






   한 줄 소감 : 누군가를 잊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무척 힘든일이다.
 





느덧 고등학생이 된 친구들이 있다. 나름대로 세상이 요구하는 그들의 몫을 다하며 살고 있지만 죽마고우였던 그들 사이엔 알게 모르게 벽이 생겼다. 무엇이 그들을 서먹한 사이로 만들었을까 2011년 일본 후지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극장판이 공개되었다. 이 영화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6명의 친구들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졌다가 다시 모이며 화해의 場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안방극장의 시리즈물을 99분으로 축약했기 때문에 가장 궁금했던 그 어떤 사건에 대한 전말이 상당부분 생략된 것 같지만 이 영화에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다시금 한데 뭉칠 수 있는 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질까 하는 궁금증이 더 크게 묘사된다.





학창시절 같은 반 아이들이 1년간 급우로 지내다 보면 유난히 친해지는 경우가 있다. 혹은 몇몇이 무리를 지어 그들만의 동류의식도 생기고 운이 좋으면 아지트도 만들고 마치 어른들이 회사생활을 하는 것을 모방하는 재미도 가질 수 있다. 영화 속 여섯 아이들의 모습도 그러했다. 초평화 버스터즈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서로의 이름이 아닌 별명을 짓고 도시와는 전혀 다른 자연에서 뛰놀던 아이들. 귀엽다 못해 앙증맞았던 그들이 10년 세월이 지나 1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한 아이의 죽음은 난데없는 사랑 확인과정에서 기인했다. 좋아하는 감정을 서투르게 표현함으로써 오해가 생겼고 수줍게만 받아들인 채 그 자리를 벗어나던 한 아이가 실족한 것이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에게 친구의 죽음은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상처로 각인되고 시간이 제 아무리 흘러도 지울 수 없기에 서로를 만나면 그 상처가 쓰라릴까 겁을 냈던 것이다.





여섯 아이들 중에서도 리더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진땅과 멘마의 경우는 첫사랑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분명 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있고 상대에게 자기의 마음을 들킬까봐 에둘러 무시하곤 하던 마음을, 지금처럼 나 너 좋아 라며 단도직입적인 사랑표현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일견 순수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조금씩 잊혀진다고 생각했던 멘마가 이미 커버린 진땅의 눈에 보이면서 이 영화는 죽었으면서 저승으로 가지 못한 귀신의 이야기로 돌변한 셈이다. 하지만 죽은 뒤의 모습 역시 멘마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일상에서 진땅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유쾌하거나 혹은 애잔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제 멘마의 소원대로 나머지 친구들과의 만남을 앞둔 채 멘마는 진짜로 친구들을 떠날 준비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추억은 있을 것이다. 그게 지금의 사랑과 잇닿아 있지 않다고 억지로 잊으려 하거나 혹은 너무 유치해서 첫사랑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으려고 애를 쓸 필요는 없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까 가끔 궁금해 하거나 혹은 제3자의 입을 통해 근황을 얻어들어도 막상 지금의 그를 만나거나 할 자신은 없다. 첫사랑은 그렇게 애틋한 존재로 남기는 게 가장 멋진 일이다.





멘마는 혼자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친구들은 훌쩍 커서 거의 성인의 모습이지만 그녀만큼은 목소리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친구들에게 남긴 마지막 소원들은 친구들에게 가졌던 자기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었고 그걸 받아들인 친구들은 어느덧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





이 영화는 일종의 위령(慰靈)의 씻김굿같은 영화다. 이승에서 맺었던 짧은 인연이지만 한동안 마음에 응어리처럼 남았던 감정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해준다. 긴 제목의 뜻처럼 그 어린 시절 아주 사소한 것도 여유로 받아들이지 못한 때 사방에 지천으로 널린 풀꽃의 이름조차 몰랐던 그때가 소중했던 걸 어쩌면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될까 하는 마음에 붙인 것 같다. 영화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를 보고 나면 이제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질 첫사랑을 떠올리며 말간 웃음을 지을 수도 있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