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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 - [리뷰] 영혼없이 사는 편이 낫다

효준선생 2014. 2. 9. 07:30






   한 줄 소감 : 오로지 신만이 조물주라는 편견은 버려야할 듯
 





18세기 중엽,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과학자에 의해 전대미문의 생명체가 탄생했다. 시체들의 일부분을 잘라다 마치 퀼트처럼 이어붙인 외모로 만들어진 그것은(사람이 아니기에 그것으로 칭한다) 사실 불량품이었다. 폐기처리될 운명의 그것은 도리어 과학자의 부인을 죽였고 분개한 과학자는 프랑켄슈타인을 쫒다 얼어죽고 만다. 이렇게 자신을 창조한 주인에 의해 내버진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위 자체가 불가능한 이유는 그에겐 영혼이 없다는 전제때문이었다.





과거 중세시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혼령, 혹은 토템에 상당한 의지를 했던 걸로 보인다. 사람들은 신이라 불리는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 거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과학의 발달로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가 아닌 과학적 진화에 더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의 크리처 역시 창조와 진화의 접점에서 새롭게 조성된 이른바 짬뽕같은 캐릭터였다.





이 영화는 신도 인간도 그렇다고 데미갓도 아닌 어쩡정한, 그것에게 “너는 누군지 알고 있느냐?”고 지속적으로 묻고 있다. 하지만 결코 그에게 생각할 시간적 여유는 주지 않는다. 성당에 머물고 있는 선의 아이콘 가고일과 악의 아이콘 데몬 사이에서 끊임없이 쫒기고 방어해야 하는 신세다. 한마디로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이라고 물어야 하는 입장이다.





원래는 이름도 없는 그것에게 가고일의 여왕이 내려준 이름은 아담이었지만 그는 그 이름을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영혼없는 도망극이 계속되면서 관객들은 데몬이 노리는 것의 정체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세상에 내놓은, 죽은 물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기라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연구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까에 관심을 두게 만든다.





데몬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것을 취하면서 사는 무리들이다. 자신들의 세력확산을 위해선 더 많은 데몬들이 필요할테고 이를 자연적인 번식에 의존하기 보다 죽은 자들의 몸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건 가고일쪽에서도 마찬가지다. 데몬과의 싸움으로 적지 않은 가고일들이 죽었고 수적으로도 열세에 놓인다. 데몬이 죽으면 붉은 파편처럼 산화되고 말지만 가고일은 하늘로 뿅하고 사라지는 것 말고는 차이가 없을 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생명을 중심으로 그것은 만들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의 섭리에 따라 태어나는 것인지 그리고 죽거나 혹은 사라지는 형태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데 힌트를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수한 폭력적 싸움이 입체효과를 방불케 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덧입혀지지만 끝까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쉽사리 내놓지 않았다. 얼핏 선과 악의 최후의 결과에 따라 권선징악인지가 궁금하겠지만 이 영화는 그런 단편적인 답을 원하지는 않았다. 엔디에 이르러서야 아담이 자신을 프랑켄슈타인이라 칭하고 자기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조물주에 의한 창조가 아닌 세세손손 번식에 의해 태어나는 진화론을 주장하는 영화라 보면 될 것 같다.





비록 공상과학 소설에서 모티프를 따왔고 그동안 다른 영화 장르의 콘텐츠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봐왔지만 이번 영화를 단순히 액션 히어로물이나 좀비 영화로 치부하기엔 상당히 철학적이다.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죽는 날까지 답을 구하기 쉽지 않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 (2014)

I, Frankenstein 
6.6
감독
스튜어트 베티
출연
아론 에크하트, 빌 나이, 미란다 오토, 이본 스트라호프스키, 재이 코트니
정보
액션 |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 92 분 | 201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