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행복한 사전 - [리뷰] 세상 모든 말의 의미를 다루다

효준선생 2014. 2. 7. 07:30






   한 줄 소감 : 지금 하는 일이 권태롭다면 이 영화는 채찍이 될 것이다
 





하루에 몇 개의 단어를 입밖으로 내뱉고 살까 그걸 세어 본적은 없지만 대략 1~200개 정도 되지 않을까 워낙 말을 하지 않고 살기에 제한된 단어만 가지고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대신 눈이나 귀를 통해 받아들이는 단어의 양은 또 얼마나 될까 영화를 보면 들리는 여러 단어들,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단어와 문장을 받아들이지만 대개는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 다수다. 한번 기억 속으로 들어간 단어들을 잊어버리거나 하는 건 별로 없다. 각인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미 체화된 것들이다.





어쩌면 활자 중독증인지도 모른다. 글자로 된 것을 보지 않으면 불안하고 영화의 영상을 보면서도 그 장면을 말과 글로 옮겨야 속이 풀리는, 이를테면 영화를 보고 이렇게 후기를 써놓지 않으면 차라리 보지 않은 것만 못하는, 그래서 이렇게 써놓고 다시 읽어보지만 날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단어는 거의 없다. 사전은 보지 않은 지 오래다. 맞춤법이나 대조하는 용도가 아니면 말이다.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치고 사전이 주는 위력은 대단하다. 중국어 공부를 한답시고 어린 아이 엉덩이만한 사전을 사놓고는 들지도 못하고 쩔쩔매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형광펜을 들고는 그 사전에 나오는 단어는 모조리 찾고 말겠다는 치기어린 집념을 다진 적도 있다. 하지만 형광펜이 그 사전을 잡아먹기도 전에 몇 차례 이사를 다니며 너덜너덜해진 탓에 아쉽지만 이태 전 신문지와 함께 폐기해버리고 말았다. 한때는 사전은 언어와 문자를 구사할 줄 아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란 생각을 품은 적도 있었다. 특히 여전히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한중사전을 내가 만들어볼까 하는 무모한 의지를 품은 적도 있었지만 이내 박약한 의지 탓에 유야무야 해버렸다.





영화 행복한 사전을 보면서 무려 15년 동안이나 딱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남자, 마지메가 부럽기만 했다. 물론 시작에선 그도 두려워했다. 인생의 황금기를 단어를 찾고 배열하고 교정보는 걸로 소비해야한다니 변화라고는 일절 생각지도 못하는 감방 속 생활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천성도 그랬고, 그를 옆에서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아내와 회사 상사와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 한 사전 [大渡海]는 그럴 만 하겠다 싶었다.





영화 중반부 대사를 통해서도 종이사전의 쇠락을 예견하기도 하고 인력감축으로 인한 작업중단의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모든 과정을 끝낼 수 있었던 건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도 한 몫 한 걸로 보인다. 다른 부서 일개 사원을 곁다리로 끌어들여 말도 안 될 프로젝트 업무를 맡겨놓고는 정작 자신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가는 상황,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라면 대개는 손을 털거나 아니면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도 커보였지만 우연하게도 진면목(眞面目)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은 마지메에겐 하늘이 내려준 業이 아니었나 싶다.





사마천이 사기를 만들고 이름 없는 화가가 제 목숨을 걸고 최고의 그림을 그려냈듯이 분명 누군가의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나 집약성은 있을 리 없을 것이다. 간단한 예로 요즘은 궁금한 것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지만 그런 것들도 누군가들이 한 줄에 다시 한 줄을 덧붙여 커다란 바다를 만든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배를 엮다]다. 왜 그런 뜻이 붙여졌나를 보니 완성된 사전의 모토가 언어의 바다를 건너는 배라고 되어 있다. 사전에 등재된 무려 20여만 개의 단어 모두를 바다라고 한다면 그 안에 실린 단어 하나는 한 척의 배가 될 것이고 그 단어들을 이리 저리 꿰면 구문이나 문장이 된다. 사전의 용도에 가장 적합한 해석이 아닌가 싶다. 영화 중간 중간 바다를 보여주는 것도 그런 의미였다.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진 단어들이 마구 다뤄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젠 더 이상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다. 이들은 이 세상 모든 단어를 하나의 사전에 담으려고 그 오랜 세월을 매진해왔다. 이들이 무섭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전을 채 다 찾아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살아야 하는 것도 두렵다. 나에게 20년의 시간을 주고 세상의 모든 단어를 집어넣을 사전을 만들라고 한다면, 한번 해보고 싶다. 그런데 과연 내게 그런 끈기와 능력이 있긴 한걸까





주인공 마지메를 연기한 마츠다 류헤이를 비롯해 미야자키 아오이, 그리고 익숙한 오다기리 조등이 자신의 역할에서 튀지 않는 연기를 선보인다. 15년이란 시대변화를 결코 경망스럽지 않게 조망한 연출의 묵직한 힘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행복한 사전 (2014)

The Great Passage 
8.2
감독
이시이 유야
출연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조, 쿠로키 하루, 와타나베 미사코
정보
드라마, 코미디 | 일본 | 133 분 | 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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