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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르누아르 - [리뷰] 그림너머 피사체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다

효준선생 2014. 2. 5. 07:30






   한 줄 소감 : 이 영화의 話者와 主語를 잘 구분해야겠다.
 




가가 아닌 화백 정도로 불린다면 그의 붓 솜씨는 이미 정평이 났고 대중들은 그의 작품 한 점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터다. 하지만 무수한 화백들의 경우 생전엔 빛을 보지 못했다가 사후에 와서야 후세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작품들에 입소문들이 덧붙여짐으로써 천정부지의 가격이 매겨지게 된다. 비싼 그림을 솎아낼 재주는 없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찜할 정도의 눈이 있다면 그림은 그저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의 인생 마지막 부분을 다룬 영화 르누아르는 분명 걸출한 화가가 주인공이지만 그가 살고 있던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들과 나중에 며느리가 되는 한 여인의 눈을 통해 대신하고 있음이 독특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반 시골이지만 넓은 부지의 정원을 가진 르누아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선호를 받고 있는 유명화가였다. 그의 시중을 드는 수많은 여성들은 르누아르의 모델로 왔다가 아예 주저앉은 케이스였고 월급을 받지 못하는 식객, 혹은 하인처럼 일을 하면서도 결코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일견 화려한 삶처럼 보인다. 백발노인 르누아르는 뭇 여인들의 교태어린 시중을 받아가며 편한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나이 들어 얻은 병, 화면으로 보면 비타민 결핍으로 보이는 관절병, 혹은 류마티스로 인해 뼈마디가 기형으로 변하는 질환을 앓고 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해 늘 의자에 앉아 생활하고 이동할 때에도 그녀들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했다. 그런데 주변을 잘 보면 남자 하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바로 전쟁시기라는 암시다.





전쟁은 대 화가의 아들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아들은 병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영감을 준 한 여인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이즈음이 되면 아버지와 아들이 마치 한 여인을 놓고 경쟁이라도 벌이나 싶기도 하건만, 아버지에게 매력적인 젊은 여인에게 얻을 수 있는 건 그녀의 나신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 창작욕을 캔버스로 옮기는 것 뿐이었다.





데데라고 불리는 여자도 그리 순탄한 삶을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전히 가난과 자신이 하고픈 일에 대한 막연한 동경, 지금은 누드모델을 하는 형편이지만 언젠가 좋은 날이 올지 모른다는 희망을 찾고 있는 중이다. 매력적인 나신이 햇빛에 반사되는 장면을 실제로 본다면 그 어떤 남자라고 혹하지 않을 자신이 없을 것이다. 장 르누아르와 데데의 만남은 이렇게 미리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흐름은 상당히 느린 편이다. 카메라는 한 두 번을 빼고는 대부분을 르누아르의 집안에서 머문다. 그 안을 채운 사람들의 느릿느릿한 움직임, 그리고 대 화백의 캔버스를 채워가는 여체들의 향연, 세상은 전쟁으로 난리가 났건만 이곳은 평화롭기만 하다. 밖에 돌아온 아들들의 전언과 부상만 아니었다면 이곳은 세외도원이나 다름없었다.





프랑스 특유의 섬세함과 에로틱한 분위기들이 자연이 주는 정갈함과 맞물려 아트하다는 기분을 준다. 르누아르가 평생에 걸쳐 그렸던 그림 몇 점을 먼저 보고 이 영화를 본다면 마치 장면들이 그림 화폭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엔딩을 통해 이들 주인공의 추후 삶도 꼭 확인하도록 하자.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아버지 르누아르에게 이 장면이 눈에 들었다면 또한 그림으로 변했을까






르누아르 (2014)

Ren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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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질레 보르도
출연
미셸 부케, 뱅상 로띠에르, 엘렌 바부, 토마 도레, 크리스타 테렛
정보
드라마 | 프랑스 | 111 분 | 2014-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