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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 [리뷰] 한 치 앞도 못 내다 보는 인생

효준선생 2014. 1. 10. 07:09






   한 줄 소감 : 미국에선 주류 백인이 아니라면 가질 만한 공권력에 대한 공포
 






루를 살면서 우린 몇가지 일을 하고 있을까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일하러 나가고 점심과 저녁을 먹고 이동을 하고 간간이 책을 보거나 디지털 단말기를 들춰본다. 누구는 좀 특별한 일을 하거나 혹은 약속을 잡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당하기도 하는데, 2009년 새해 첫날 미국인 오스카 그랜트가 그런 케이스였다.





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의 영어원제엔 낯선 지하철 역명이 달려있다. 프룻베일 스테이션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실제 역명이다. 2009년 1월 1일 새벽 이곳에선 한 흑인 남자가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당일 오전 병원에서 사망한다. 이 상황은 당시 역사 안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촬영되거나 찍혔고 사망소식이 알려진 즉시 목격자들의 사진과 증언이 각종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한 흑인남자의 일상은 크게 남달라 보이지 않았다. 비교적 유순해 보이는 인상에다 건실함이 묻어나는 가정에서의 모습, 어린 딸과 놀아주는 모습이 왜 저런 평범한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우리가 흑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갖고 있는 편견들, 예를 들어 총기 사건, 마약 사건, 혹은 폭력이나 인질 유괴사건에 연루되었거나 사주를 받는다는 정도의.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를 타고 가다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도 핸즈프리로 하고 있다면서 보여준 행동, 마트에서 처음 보는 여자에게 생선 요리법을 알려주려고 애를 쓰는 장면, 딸까지 낳고 오래 동거를 했지만 가난을 이유로 결혼을 못한 여자친구에게 올해가 가기전 프로포즈를 해야겠다고 다짐 하는 등. 그의 한 해의 마지막은 분주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일들을 하나 둘씩 해나가는 과정에서 일말의 불안감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뜸들이기일까 싶어서였다.





오스카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친구들은 시내에 신년맞이 불꽃 축제를 보러가기로 한다. 평소 같았으면 차를 몰고 나갔으련만, 이날따라 지하철을 타고 가라는 엄마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 무리는 지하철을 타고 나간다. 그리고 그 길이 다시는 집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는 걸 그는 알지 못했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였지만 다큐가 아닌 극영화라는 점, 그리고 그 인물의 일상이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그가 맞아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최후와 맞물려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제 아무리 공권력이 강력한 미국이라고 해도 무기는 고사하고 흉기 조차 들고 있지 않는 민간인을 향해 폭력적으로 제압을 하는 장면이 마치 80년대 서울 대학가에서 벌어진 시위 진압 양상과 닮아 보였다.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한 뒤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오스카 그랜트 라는 사람의 마지막에 대해 또다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서서히 데워지다 한 번에 폭렬하고 만 유리그릇을 보는 것 같은 영화의 힘에 반응한 것이다. 이 영화엔 오스카가 유난히 타인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그 선행의 뒤 끝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불행으로 몰아넣었으니 인생이란 참 덧없다. 이 영화를 공권력의 남용이 가져온 몹쓸 례로 봐도 좋고, 여전히 소수의 입장에서 사는 미국 흑인들의 불안한 생활로 들여다 봐도 좋겠다. 무엇보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대충 보낸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