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소감 : 결핍을 느낄때 비로소 자신의 반쪽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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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원정출산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는 아마 병역과 관련해 고의적 면제여부에 관심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소위 이중국적을 소지한 채, 돈 좀 있다는 걸로 병역의 의무를 하지 않으려는 몇몇 고위층 자제, 재벌들의 행태가 못마땅한 탓일 것이다. 그럼 중국인들에겐 어떤 의미일까 원정 출산이라는 말 자체가 있을 리 없다. 자기가 그럴 경제적 능력이 된다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영화 시절인연은 바로 이 원정출산을 계기로 미국 시애틀로 넘어간 어느 젊은 중국 임산부의 이야기를 서정적인 로맨틱 코미디로 엮은 내용이다.
꽤나 오래 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를 통해 서양식 로맨틱 코미디의 진수를 선사한 이 영화는 바로 이 시절인연이라는 불교적 색채가 농후한 제목을 단 영화의 모티프가 되었고, 영화 속에서도 여러 차례 오마주를 한다. 두 주인공이 극장에서 본 영화가 바로 그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아무리 시애틀이라고 여태 그 영화를 상영할 일은 없지 않은가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이란 연분엔 다 때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만큼 자신의 연분을 만나는 건 의미가 있다는 건데, 이 영화 속 주인공의 사연을 들여다 보면 정말 연분은 따로 있는 걸까 싶다. 두 사람은 풋풋하 청춘 남녀가 아니다. 둘다 이미 결혼을 했지만 이혼상태이거나 혹은 한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다. 대충 말해서 둘다 결혼을 안정된 상태의 1 이라고 본다면 이 두 사람은 상당히 불안정한 상황인 셈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끌려야 할 당위성도 별로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지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믿음이자 정이다.
별거 중인 아내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둔 남자, 중국에 있을때는 잘 나가던 의사였지만 미국에선 의사를 할 수 없으니 여행객들에게 운전이나 해주는 신세다. 유부남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중국에선 출산할 수 없는 관계로 미국까지 건너왔지만 그녀 역시 나중 일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혈혈단신 미국까지 왔지만 자기처럼 몸 풀려고 온 임산부 말고는 딱히 의지할 곳도 없다.
이렇게 뭔가가 결핍된 두 사람이 조금 가까워진 건 두 사람의 성격도 어느 정도 어울렸다고 보이는데, 우선 남자의 성격이 참 좋다. 의사 출신에다 영어도 잘하고 돈도 없어 보이지는 않는 그는 배려의 지존이다. 아무리 돈을 받고 운전수 노릇을 하곤 있지만 그 정도의 모습이라면 넘어가지 않을 여자 없을 듯 싶다. 물론 선수처럼 여우짓을 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우러나오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다. 그리고 여자, 몸도 불편할테지만 그녀 역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된 건 이 영화의 제목처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사는 동양인들의 다소 위축된 모습도 얼핏 보였다. 출산을 위해 입국할 수 없을까봐 복대로 배를 꽁꽁 싸매는 장면과, 중간에 한 번 들통날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는 장면, 그리고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기 위해 또 다시 시험과 면접을 보는 남자의 모습들이 그렇다. 어차피 남의 나라에서 백프로 마음 편하게 살기는 어렵겠지만 이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결코 혼자서는 불안해서 못살 것 같은, 그래서 더더욱 하나가 되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도 생긴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극 흐름과 자연스러운 연기들이 이 겨울에 보기에 부담이 없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이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가는 걸 보면서 인연이라는 건 억지로 갖다 붙여야만 가능한 건 아니구나 싶다. 제 아무리 억만금을 가진 부자라고 해도 정을 붙이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실제로도 이런 케이스가 적지 않을 것 같은 현실적 모습들이 영화 시절인연을 추천하게 만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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