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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 - [리뷰] 한 걸음 더 뒤에서 봐도 모두가 인생인걸

효준선생 2013. 12. 21. 02:30

 

 

 

 

 

 

   한 줄 소감 : 꼭 보고 싶었던 이야기, 삶을 걸 수 있는 인생이었기에...

 

 

 

 

 

 

때는 중국여행전문가가 될 꿈도 꾼 적이 있었다. 2000년을 전후로 봇물처럼 터져나온 중국발 여행기를 읽으며 저들보다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을까 가늠하곤 했다. 하지만 이동에 대한 두려움, 먹고 자는 것의 불편함에서 오는 선입견들이 한 곳에서 머물며 많은 것을 보자는 생각으로 그치게 했고 그렇게 얻은 건 북경이고 잃은 건 중국의 나머지였다.

 

 

 


평생을 살면서 oo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건 일정 수준의 재화를 모아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처럼 영토는 좁고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것을 양반스럽지 못하다며 하찮게 보는 문화에서 여행가라는 칭호는 얻기 쉽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여성은 나름대로의 고충 때문에, 한 집안의 장남은 나이든 부모를 두고 멀리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유교적 관념때문인지 그저 밖에서 자신을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은 마음에 그칠 공산이 상대적으로 크다.

 

 

 


여기 인도전문가라고 부르는 인물이 있다. 지역 전문가라 하면 해당 국가의 언어를 전공하였거나 혹은 나랏돈을 받아가며 그 나라에 파견되어 관공서에서 오래 일해 본 사람들을 통칭하기도 하지만 그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로지 인도에 대한 관심과 인도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카메라에 담는 자체가 좋아서 움직이다 보니 얻은 명예로운 별칭이었다. 그랬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 남긴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는 인도에서 얻은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 큰 병으로 악화되었고 그렇게 역시 인도 이야기를 담은 신작 영화 한 편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 그의 이름은 이성규고 영화 시바, 인생을 던져가 이렇게 선을 보였다.

 

 

 


연전에 영화 오래된 인력거를 본 적이 있다.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비루한 인도 하층민들의 삶, 그 모습들이 너무 인상적인지라 당시 나름대로 성의껏 리뷰를 작성한 기억이 있고 그 글 하단에 감독은 비밀댓글을 달아주었다. 잊을 수 없는 인연인 셈이다.

 

 

영화 오래된 인력거 리뷰 -> http://blog.daum.net/beijingslowwalk/16153859

 

 

 


이 영화는 마치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한 듯한 냄새가 났다. 별거 없는 독립 프로듀서와 카메라 맨, 두 사람은 외주 의뢰를 받아 인도로 뛰어 든다. 처음엔 여행 르포로 생각하고 찍다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들어찼다. 시위하는 사람, 남의 물건을 갈취하는 사람, 그리고 죽음을 배웅하는 사람들. 유럽에 간 사람들은 오래된 건축물을 남기지만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듯,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건 유수한 건축물이 아닌 들들 볶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도처럼 생과 사에 대해 원초적으로 고민하며 사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건 종교처럼 벽을 두르고 그 안에서 그들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장소가 어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의 물음이었다. 물론 이 영화에선 그들말고 남의 것을 취하려드는 무리들도 보였다. 그것이 인도에 대한 무작적 경배의 의식이거나 혹은 인도에 대한 선입견을 주입하기 위함은 결코 아니었다.

 

 

 


인도는 숟갈에 떠다 누군가가 입 속에 넣어주는 그런 곳은 아닌 듯 싶었다. 감독 자신의 분신으로 보이는 프로듀서와 카메라맨은 고통이나 다름없는 여정을 하면서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직업정신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만나는 인도 사람들의 짧지만 간결한 화두들이 그들을 조금씩 자극했고 마치 고승이 무리들에게 던지는 法語처럼 들렸다.

 

 

 


인도 바라나시에서 일이다. 그곳은 티벳의 천장과 더불어 지구상에서 죽음을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신을 강물에 띄워 보냈다가 다시 건져 올려 이승에서 묻은 티를 제거하고 높게 쌓아올린 나무위에서 활활 타오는 제의를 지낸다. 거죽만 남은 육신이 불과 함께 火化되고 그 곳 사람들은 그제서야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 믿었다. 피디가 무리를 해가며 그 장면을 찍으려 애를 쓰자 구루라고 불리는 현자는 말을 한다. “기계에 담으면 과연 네 것이 되겠느냐 마음에 담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을.”

 

 

 


영화를 보는 건 내가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어느 세상의 그곳을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간접체험하는 셈이다. 인도라는, 아마 평생동안 가보지 못할 그곳의 이야기를 이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건 이성규 감독처럼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엔딩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까이서 본다고 더 잘 보이는 건 아니다.” 그의 영화는 다시 볼 수 없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이 시대의 匠人으로, 그를 보내는 마음이 애잔하다. 엔드 크레딧을 끝까지 지키는 걸로 추모의 念을 대신하고 싶었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시바, 인생을 던져 (2013)

SHIVA, Throw Your Life 
9
감독
이성규
출연
박기덕, 수현, 이미라, 이정국
정보
드라마 | 한국 | 98 분 | 2013-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