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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 [리뷰] 그들이 걸으면 곧 길이 된다

효준선생 2013. 11. 20. 07:09

 

 

 

 

 

  한 줄 소감 : 하지 않아서 두려운 것뿐, 하고나니 그들이 부럽다

 

 

 

 

 

신들은 잉여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결코 잉여라는 저렴한 단어로 그들을 칭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보고 대뜸 들었다. 요즘 스물 초반의 한국아이(?)들이 흔히 하는 생각들이란 입시, 학점, 연애, 군대, 취업 이 정도에서 맴돌지 않을까 그 이상의 것들은 주어진 환경 탓, 경제적 여건, 주변의 따가운 시선 등으로 여의치 않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서 그냥 주저앉아 누군가가 떠먹여주는 일용할 양식에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는지.

 

 

 


20대 초반의 남자 넷이 뭉쳤다. 각각의 이름은 호재, 하비, 현학, 휘다. 본명도 있고 닉네임도 있고 적고 보니 모두 이름에 ‘ㅎ’ 이 들어간다. 특이하다. 친구처럼, 형 아우처럼 지내는 이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청춘의 한 자락을 ‘돈 없이 유럽가서 살기’로 정해버렸다. 지금은 이런 무전여행이 드물지만 30년전만 해도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업무 전산화가 되기 전, 가난한 청춘들에게 무전여행은 한번쯤은 꿈꿔본 멋진 일탈이었기 때문이다.   

 

 

 


중학 1학년 때 선생은 자신이 땡전 한푼 없이 제주도 여행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의 잠을 깨워주곤 했는데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마치 어제 들었던 것처럼 생생한 건 그만큼 어렸던 나에게도 별천지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그렇게 해볼까 하는.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세파에 찌들고 몸도 예전같지 않고, 무엇보다 겁도 더럭나기에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견 황당한 일을 그것도 말도 안통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저질렀다는 건 그만큼 그들에겐 용기와 체력과 나름대로의 자신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영화 초반 동행했던 이들의 선배들이 일찌감치 중도 포기하고 귀국길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말도 안될만큼 무모한 히치하이킹을 통해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정해놓은 가치관에 밀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어린 이들 네 사람에겐 퇴로란 없었다. 영화를 찍고 있고 생존을 위해 마련한 자신들의 재주, 호스텔 홍보 영상 만들기를 한번도 해보지 못한 채 끝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갈수록 줄어드는 잔고와 피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까지 가는 여정은 이들에겐 최악이었다. 그게 화면을 통해 짜증처럼 밀려왔다. 이들 앞에 포기라는 단어가 코앞에 다가 왔을때 신은 이들을 버리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호스텔 홍보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 산재한 수많은 호스텔들은 여건상 온라인 홍보를 하곤 있지만 거창하게 광고회사를 끼고 만들 수는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들이 제안한 조건을 들어주고 그렇게 만든 영상들이 대박을 친 것이다. 영화 중간에 잠시 소개가 된 걸 보니, 생각이상으로 훌륭한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아마추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발한 상상력과 영상 편집기술이 돋보였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호스텔의 성격상 이들의 영상은 비단 하루 잘 곳을 홍보하는 영상이 아닌 재기발랄한 요즘세대의 자기자랑처럼 퍼져나갔다. 이들에겐 기적이나 다름없는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바닥을 보인 잔고는 조금씩 채워졌고 큰 돈은 아니더라도 다음 목적지로 가야하는 당위성은 찾은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터키로 그리고 이들이 처음부터 최종 목적지로 삼았던 영국까지. 이들의 여정은 흥분과 패기로 점철되었다.

 

 

 


아무리 젊다지만 저렇게 지치지도 않고 1년을 꼬박 타향살이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4명의 큰 장정들이 부딪치며 싸움도 많았을텐데, 정말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 세웠던 목표인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 마지막 피치역시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냥 포기해도 그만이었을 그 작은 프로젝트가 초심을 잃어버릴 뻔한 그들 마음에 자극이 된 셈이다.

 

 

 


누구나 꿈은 꾼다. 유럽일주. 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아무도 쉽게 할 수 없는 꿈. 그러나 이들은 해냈다. 지금은 한국에 와 있을 테지만 그들이 하지 못할 일은 없어 보인다. 무엇이 두려운가. 별것도 아닌 일에 투정만 가득한 채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진짜 잉여들에게 이 영화 적극 추천한다. 이들처럼 유럽 안가도 된다. 하지만 사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시간을 보내는 게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면 아니 두 시간 동안 느낄 수만 있어도 성공적이다. 대단한 프로파간다 영화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2013)

Lazy Hitchhikers' Tour de Europe 
9.1
감독
이호재
출연
이호재, 이현학, 하승엽, 김휘, 조성익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106 분 | 2013-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