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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나를 위한 소나타 - [리뷰]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효준선생 2013. 10. 29. 07:30

 

 

 

 

 

 

   한 줄 소감 : 아파하는 아이들 사이에 귀에 익은 클래식 선율이 애잔하다

 

 

 

 

 

화 한나를 위한 소나타는 독일의 나치세력들이 극성했을 무렵 러시아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던 한 유태인 남매의 이야기를 통해 세월이 벌써 이렇게 오래 흘렀음에도 개인에게 남겨진 심리적 상흔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예술적 감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종전 70년이 다되는 이 시점에도 아직도 일제 시대의 그림자조차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모종의 오버랩같은 그림을 연상케 했다. 적지 않은 문인, 예술가들이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영달과 치부를 위해 그들을 위해 작품 활동을 하거나 연주를 했던 과거와 유태인이라는 딱지 때문에 마치 부평초처럼 끌려 다니며 나치의 추종자들 앞에서 연주를 해야 하는 두 소년 소녀의 모습이 묘한 감흥을 주었다.

 

 

 


아브라샤와 라리샤 남매,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이들은 정작 독일에서 수 천km나 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살고 있는 유태인이었다. 하지만 그곳조차도 그들이 마음 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러시아군을 위해, 혹은 점령군이 된 나치 독일군을 위해 그들은 연주를 하고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래야만 딸린 가족들의 안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독일 소녀인 한나와 만나게 된다. 오로지 남매의 음악실력에 매료된 한나에게 민족과 국가는 다르지만 친구로 뭉치는데 어른과는 달리 장애란 없었다. 한나가 남매에게 다가간 장면도 오히려 적극적이었고, 한나의 부모 역시도 나치들과는 전혀 다른 민초의 마음 그것이었다. 하지만 난동같은 세상은 그들의 그냥 두지 않았고 그 지역의 점령군이 누구냐에 따라 그들은 도망가거나 한숨을 돌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유태인들의 입장은 달랐다. 누가 점령군으로 오든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고 개중엔 소위 홀로코스트로 끌려가 무자비한 생체실험대상이 되어야 했다. 영화에선 50세 이상의 고 연령자들이 소집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열차에 실려가는 그들의 모습이 처연하기 이를데 없어 보였다.

 

 

 


엔딩은 생각한 그 이상으로 마음이 아팠다. 어른들이 저지른 추악한 전쟁의 한 복판에서 왜 아이들이 그런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건지,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자 함에도 마치 한갓 유흥의 도구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인지, 최근 몇몇 유명 음악인들이 그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가사도 없는 클래식 음악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길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다.

 

 

 


한 할머니의 회고라는 방식을 통해 이야기 되는 이 영화를 지난 역사에 대해 사죄는커녕 반성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 이웃나라의 정치지도자와 정작 제 조상들이 수모를 겪었음에도 역사적 청산이라는 과제 앞에서 미적거려온 정권 친화적인 역사학자들과 몇몇 위정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