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노라노 - [리뷰] 그녀도, 영화도 정성과 수고로 가득하다

효준선생 2013. 10. 17. 10:20

 

 

 

 

 

 

   한 줄 소감 : 포스터 속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아련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 

 

 

 

 

 

 

금은 패션이라 하면 남들과는 좀 다른 옷을 입고 남들보다 앞서 유행을 만들어 내는 행위, 혹은 그런 일을 표현하는 부류 정도로 인식이 되지만 한국에서 60년 전 패션이라 하면 먼나라 일로 받아 들여졌다. 아니 입는 옷에 치장을 한다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추위를 막아 주고 치부를 가려주고 외부의 위해한 것으로부터 최소한의 방어장치가 바로 옷의 기능이었다. 일부 아주 잘사는 사람이나 연예인이 아니고서는 별도의 치장은 불필요하거나 사치스러운 일로 인식되었다. 그런 시절,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일을 해온 한 사람이 있다.

 

 

 


올해 여든 다섯인 바로 노라노다. 그녀는 60여년을 옷 만드는 일에 종사했다. 요즘엔 너무나도 쉽게 패션 디자이너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며 방송에서 얼굴도 많이 내비치는 군상들 때문에 몇몇은 이름과 얼굴을 매치할 수 있지만 얼마 전만 해도 패션 디자이너란 서민들과는 동떨어진 자기들만의 세상에서 사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이름, 바로 노라노는 어떻게 귀에 익었을까 간판을 통해 익숙해진 이름, 노라노 양재학원이 그것이다.(그런 학원들은 디자이너 노라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영화 노라노의 그것은 브랜드 이름이자 지금도 현역으로 있는 여성 디자이너의 닉네임이다.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의 이름을 딴 그녀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자신의 닉네임을 갖게 된 사연과 그녀가 황무지 같았던 한국에서 최초로 기성복 패션쇼를 열었던 디자이너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녀에 대해선 잘 몰라도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소동은 익히 알 것이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여성 옷일 뿐인 미니스커트가 한국에 등장하는데 분명히 일조를 한 그녀 뒤엔 디자이너 노라노가 있었고 수많은 동시대의 여배우들에게 그녀는 최초의 코디네이터였을 것이다.

 

 

 


이 영화엔 적지 않은 인터뷰이가 나온다. 식자층말고도 개중엔 추억의 이름들이 꽤 있다. 어린 시절 골목에 붙어있던 영화 포스터 속에서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여배우들, 지금은 감출 수 없는 주름진 얼굴들이지만 그녀들에겐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자신의 전성기를 함께 해준 노라노의 옷들을 소중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 세대를 풍미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무려 두 세대에 걸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한때 갖고 싶은 최고의 옷으로 그녀의 손길이 닿은 양장을 꼽았던 그녀들은 지금도 그때의 옷을 버리지 못한다. 꼭 다시 입을 것 같아서가 아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자신의 몸을 치장했던 추억때문이리라.

 

 

 


이 영화는 서은영이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디자이너 노라노를 위한 전시회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장면을 위주로 담았다. 과정에서의 의견 불일치, 존경과 이해의 골을 오고 가며 느리지만 꼼꼼하게 채워가는 그들의 노고를 보면서 우리 시대가 장인을 대접해야할 필요가 왜 있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를 메운 수많은 영상 자료들, 신문 기사들, 심지어 재연 장면들까지도 힘들게 모아 놓은 그것들은 내가 어린 시절 분명 보았으면서도 망각하고 있던 추억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맞다 저 시절엔 저런 것들이 있었고, 저런 사람들이 있었다”며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런 흥분은 기분 좋은 엔돌핀이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그녀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겐 한국 현대 여성사로, 그녀를 아는 세대들에겐 추억을 끄집어내는 기회의 시간이 될 것이다. 평생을 화려함으로 무장했을 것 같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예술인이 아닌 기술자, 혹은 장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옷이란 만드는 사람의 손을 떠나 입는 사람의 것일 때 제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패션인지 여부는 결국 옷 주인의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60여년을 한 가지 일만 해 온 사람에게 장인이라는 호칭은 결코 과하지 않다. 여전히 정정한 모습의 그녀는 노인복지관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년배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아우라일 수도, 카리스마 일 수도 있다. 여성의 이야기와 시대의 현상들을 주로 담아내온 제작사 연분홍치마와 홍보사 시네마달이 선택한 걸작 다큐멘터리 한편을 기대해도 좋겠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노라노 (2013)

Nora Noh 
0
감독
김성희
출연
노라노, 서은영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3 분 | 201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