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소감 : 잘 알려진 이야기, 잊을 뻔한 이야기에 대한 경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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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에 안개가 자욱해졌다. 영화의 뒤끝엔 희망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 희망이 실제라면 그렇게 해맑은 웃음만이 가득할 수는 없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미성년자 약취 강간범죄라는 최악의 범죄인에게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비교적 낮은 수준의 형량을 언도한 뒤 스크린 속의 등장인물들처럼 또한 분노한 끝인지 모르겠다.
영화 소원은 어느날 8살 소녀에게 닥친 끔찍한 사건으로 소녀를 비롯해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번지듯 퍼져나가는 후유증과 치유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가 그저 픽션에 불과한 영화같은 영화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실제로 발생했던 모 사건과 닮아서다. 사람들은 저항능력이 없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그것도 짐승이나 할 법한 범죄행위에 치를 떨었고 피해자에 대한 무한한 가여움을 표시했지만 그 뒤 간간히 전해져 오는 소식 말고는 점차 기억에서 잊혀지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인 소녀와 그의 가족들에겐 아마 죽을 때까지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일 테고 영화에서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앙금 같은 것이 남아있다고 생각했을 때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은 다른 사람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범죄에 대한 사적영역에서의 복수나 법정에서의 카타르시스가 없어 다른 여타 영화와는 좀 다르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럴 수 없는 것들이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싶다. 소녀의 아빠가 명패를 집어 들어 범인을 내리치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차라리 선혈이 낭자한 채 맞고 쓰러진 범인을 봐야 후련했을까 아니면 판사가 모두의 염원대로 즉시 사형이라도 언도했다면 속이 시원했을까
이미 몸과 마음에 큰 상처가 난 아이로서는 그런 분노의 처리 방법이 어른들 보다 성숙해보였다. 아빠를 말리는 모습과 태어난 동생을 보면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말하는 소녀를 보면서 비록 영화 속 만들어진 캐릭터일 뿐이지만 그녀가 바로 비이성적이고 삐뚤어진 사고를 가진 어른들에게 옳은 길을 인도하러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잠재적 아동 성애자나 술만 먹으면 ‘개’가 되는 자들이 좀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심신미약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거리로 감형 따위를 해주는 판사들에겐 만약 자기의 딸이었다고 해도 그런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건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제 아무리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죄를 묻고 형을 내린다고 하지만 애초부터 잘못된 법전을 뒤져가며 언도를 해봐야 공분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아이가 제 아버지를 보면서 악몽을 떠올릴 정도로 힘들어하고 그걸 치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사의 역할을 대신해주었나. 이 영화엔 범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소녀에겐 백기사였다.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을텐데 하는 마음과 특히 학교 친구들이 비뚤 빼뚤 쓴 손 글씨의 편지로 소원이네 집 문방구 유리창에 덕지덕지 응원 글을 남긴 장면과 여전히 자신의 딸 앞에 나서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코코몽 인형을 통해 간신히 투과될 때 많은 사람들은 안쓰럽고 애틋해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전생에 무슨 악연이었길래 그리 만나게 되었을까부터, 나중에 먼 미래 소녀가 안고 살아가야할 이 사회의 편견과 백안시로부터 그녀는 무사할까 하는 다소 오지랖 넓은 걱정까지. 이런 저런 생각 탓에 그렇게 머리가 아팠던 모양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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