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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 [리뷰] 도시남녀의 인연

효준선생 2013. 9. 23. 08:03

 

 

 

 

 

   한 줄 소감 : 가을에 썩 잘 어울리는 탐색형 러브스토리

 

 

 

 

전 같이 근무하던 회사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사무실에서만 앉아 있다가 계단 통로 쪽에 붙은 작은 창문을 통해 하늘만 보여서 좋다고, 그게 뭐가 좋으냐고 묻자, 자기는 회벽 건물이 체질적으로 싫다고 했다. 도심 한복판 사무실로 가득찬 이 빌딩 숲에서 하늘만 보기 정말 어려워졌다. 먹고 자는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베란다 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오브제 역시 절반은 하늘이고 나머지 절반은 옆 동 건물이다. 그 쪽에서도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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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던 곳이고 돈을 벌기 위해 작은 공간에서 몸을 누이고 산다. 감옥 철문같은 소리를 내는 대문을 닫고 나오면 바로 1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상어 아가리같이 입을 벌리고 있고 부지런히 각층을 누비며 실어나르고 있다. 큰 길로 나섰더니 오고가는 수많은 인파 속에 묻혀 내가 그들인지, 그들이 나인지 구분이 안간다. 깜빡하면 목적지를 잃어버릴 만도 하다. 도시에서의 삶이란 매우 루틴하다. 그게 체화(體化)되면 그러려니 하고 산다.

 

 

 


영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은 거대도시에서 살고 있는 미혼의 두 남녀가 어떻게 만나게 되는 지에 대한 관찰 카메라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두 주인공이 영화에서 조우하는 건 딱 두 번이다. 물론 길거리에서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며 스치는 장면도 있지만 유의미하지 않다. 서로가 아니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정전이 되서 가게에서 초를 사면서 손이 부딪치는 장면, 월리를 찾아서에서와 같은 복장을 한 그에게 달려가는 여자의 모습 딱 두 번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일상이 전혀 타인의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덧 혼자 있는 게 편하고 남자의 직업처럼 컴퓨터로 작업하며 호구지책을 마련하다면 굳이 출퇴근 시간에 시달리거나 상사와 동료와 신경전을 벌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도 실컷 접할 수 있다니 그에게 외로움은 일견 사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는 건축일도 꿈꾸었지만 지금은 쇼윈도 디스플레이어로 일하는 여자, 동거까지 한 남자도 있지만 헤어짐 뒤에 찾아온 그녀에게 외로움은 좀더 현실적이다. 폐소공포증을 앓고 있고, 대인관계도 그다지 원만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이웃이 쳐대는 피아노 소리도 언제는 힐링처럼, 언제는 소음처럼 여긴다.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짝이 있었던 적이 있다. 여느 청춘 남녀들처럼 사랑을 나누고,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공허하다. 그런 사랑의 뒤끝은 위험하지만 그저 정서적 빈 공간을 메워주는 콜크같은 존재다. 언젠가는 뽑아내야 하는 그것처럼.

 

 

 


영화 시작과 중반, 그리고 후반 이 영화는 마치 건축이 사회와 구성원에게 미치는 심리학적 영향에 대한 논문을 설파하듯 하는 일장연설을 한다. 특히 “공용벽”이라고 불리는 공간, 그저 간판이나 내거는 용도인 그곳에 일부러 창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같은 시간, 마주보는 장소에, 이 포인트는 의미가 있다. 세상을 향해 소통을 하자는 것과 내가 지금 이 시간에 하는 것과 확실히 같은 행위를 이 세상 누군가도 하지 않을까 하는. 두 사람이 각자의 공간에서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연은 있어 보인다. 단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흥분하거나 초조해하거나 체념한다. 거대 도시 한 복판에서 내 인연입네 하고 나타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막연하게라도 용기를 내야 하는 걸까 당신이 내 사랑이 맞소? 하고.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대개 쓸쓸해보인다. 요즘 같은 초가을 이 영화가 나름 의미있게 들리고, 보이는 이유는 사랑이 고픈 탓이리라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2013)

Sidewalls 
7.5
감독
구스타보 타레토
출연
하비에르 드로라스, 피욜라 로페즈 드 아야라, 아이네스 에프론, 라파엘 페로, 아드리안 나바로
정보
로맨스/멜로 | 아르헨티나, 스페인, 독일 | 94 분 | 201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