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바람이 분다 - [리뷰] 종이 비행기를 날리던 소년의 꿈

효준선생 2013. 8. 30. 08:03

 

 

 

 

 

   한 줄 소감 : 보고나니 나만의 느낌이 생겼다.

 

 

 

 

 

도근시여서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쓴 소년의 취미는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비행기 그림이 들어간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소년이 자라 대학을 가고 비행기 제작업체에 취업을 하는 과정은 실재했던 일본의 엔지니어 호리코시 지로의 그것이었다. 영화 바람이 분다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그때까지를 편년체 방식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한 남자의 일과 사랑에 대한 회고다.

 

 

 


이 사람은 한국인의 입장에선 크게 환영할 일이 없다. 그가 만든 비행기가 일본제국주의 시절 전투기로 둔갑,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 일본 군대의 요구에 의해 사양을 변경하고 새로 제작한 비행기를 시험 비행하는 장면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호사가들은 이 영화의 상영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이런 선입견 때문에 좀 무거운 마음으로 관람을 했지만 이내 익숙한 톤의 그림체와 서정적인 줄거리에 침잠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 영화의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설정을 무의식적으로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침략도구로서의 전투기 제작자가 아닌 일밖에 모르던 한 남자에게 순정파와 같은 사랑의 세레나데도 눈여겨 볼만하다는 이야기도 꺼내보고 싶다. 그가 누구든지 간에 결핵이라는, 1930년대엔 불치병에 가까운 질병을 안고 사는 여자를 위해, 그가 보여준 어려운 선택은 인정받아야 할 것이며, 그와 그의 그녀의 길고도 짧은 인연이라는 게 마치 전쟁판을 피하지 못하며 전전긍긍하고 살았던 그 당시 민초들의 일반적인 삶과 비유된다.

 

 

 


관동대지진으로 보이는 지진과 이어지는 화재로 말미암아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은 만났고 기약없이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땐 둘다 어른이 되어 본격적인 사랑을 하게 되나 기대를 했다. 하지만 언급한 대로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은 워커홀릭에 가깝게 묘사되었다. 학창시절에도 그는 도면과 함께였으며 당시 최대 군수산업체인 미쓰비시 중공업에 들어간 뒤 그의 행보에 사랑은 끼어들 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정해진 인연과 바람이었다. 이 영화에서 바람은 매개체다. 일방에서 다른 일방으로 전달되는, 그래서 모자와 파라솔이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 되었고, 다시 바람은 하늘에서 뿐 아니라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불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바람이 없어도 비행기는 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펄럭거리는 바람 소리에 가슴을 펴고 언덕위에 서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자유인의 그것이었다.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은 욕망.

 

 

 


각본을 집필하고 연출을 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주인공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상당히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전설적 비행기 제작자인 카프로니 백작과 독일의 엔지니어 카스트로프를 지로 옆에 수시로 등장시키며 비행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결코 남과 다른 나라를 공포와 피해를안겨주는 괴물이 아닌 평범한 여행자를 먼 곳으로 이동시켜주는 평화의 상징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대사들을 여럿 집어넣었다. 특히 독일인 카스트로프의 입을 빌어 “파멸”이라는 단어를 썼다. 일본 영화에서 일본 파멸이라는 단어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와 독일은 일본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아니던가.

 

 

 


마야자키 하야오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주인공과 배경의 움직임은 익숙한 편이다. 거기에 추가로 소리와 음향효과를 배가시켰다. 지진과 화재가 나는 순간의 굉음과 같은 음향이라거나 비행기가 날 때의 소리, 그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순간의 그것들은 자연음에 가깝게 들렸다.

 

 

 


호리코시 지로는 일본에선 추앙받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서의 그의 사랑이야기는 슬프다.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보는 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날 것(飛機)에 대하여 문외한인지라, 그들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에 눈을 반짝거리고 보았으니, 가을인 모양이다. 극장 문을 나서니 가을을 재촉하는 저녁 바람이 분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바람이 분다 (2013)

The Wind Rises 
2.9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안노 히데아키, 타키모토 미오리, 니시지마 히데토시, 니시무라 마사히코, 스티븐 알버트
정보
애니메이션, 드라마 | 일본 | 127 분 | 201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