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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 - [리뷰] 사과나무도 좋지만 사랑이 더 좋아

효준선생 2013. 8. 19. 08:30

 

 

 

 

 

   한 줄 소감 : 지구 종말보다, 오기 전의 혼란스러움이 더 걱정이다.

 

 

 

 

Key word // 재난, 묵시록, 내 반쪽은 어디에, 로드무비

 

 

 

 

구의 종말과 그걸 인지한 지구 생명체 인간의 심리변화를 다룬 이른바 아포칼립스 영화들은 대개가 음울하다 못해, 비장미가 넘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좀 바꿔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한날 한시에 동시에 세상과 작별해야 한다는 상황이라면 굳이 그토록 난리를 피울 필요가 있을까? 그 어떤 방법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라면 차라리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후자를 선택했다. 이 영화는 지구 멸망이라는 엄청난 명제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른 행성과의 충돌이 가져올 전조같은 건 뉴스를 통해 상황만 전달하는 이른바 사건일 뿐이지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에겐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가급적이면 자신이 하고픈 일이나 해보자는 마인드로 임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시한부 인생의 이야기들 같았다.

 

 

 


이웃에 사는 닷지와 페니, 3년 만에 처음 아는 척을 하지만 그 과정이 한편으로는 우습다. 남편을 버리고 가버린 아내, 여자친구를 뻥 차버린 남자, 그리고 남겨진 두 사람이다. 그들은 겉으로만 보기엔 참 안어울려 보였다.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스타일도 천양지차다. 그런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나이차, 하고 다니는 모양새와는 다른, 바로 이야기가 어느새 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당사자들도 잘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자는 인생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첫사랑을 찾아 떠나고 여자는 그런 남자 곁에 남는다. 어차피 도시에 있어봐야 폭도들에게 당할텐데 할일도 없고 잘 되었다싶다. 그렇게 떠나 일종의 여행과정에서 그들은 어색함과 민망함을 거쳐 조금씩 자신과 닮아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는 로드무비의 성격을 띤다. 지구가 종말에 가까올 수록 두 사람의 관계도 돈독해지고, 곳곳을 이동하면서 원래의 목적이었던 남자의 첫사랑은 어느새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의 사랑 찾기로 변한다.


이들의 사랑을 들여다 보면 사실 지구가 망하지 않는다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사람의 사이를 가깝게 하는 건 주변 여건이라는 말도 맞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영화는 인연도 필요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주는 그것밖엔 선택지가 없는 답답함도 함께 묻어 있었다.

 

 

 


스피노자가 말했듯 당장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지만 이들이 선택한 것은 “함께” 였다. 영화를 보고 나니, 만약 진짜로 21일 후에 지구 종말로 그냥 다 죽어야 한다면 난 누구와 “함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 빙글빙글 원을 돌다 스톱을 외치면 주변 사람들과 호명된 숫자에 맞게 서로를 포옹하고 거기에 끼지 못한 사람은 아웃되는 것처럼 아웃될 술래에 포함될 것 같은 다소 불길한 예감이 든다.

 

 

 


영화에선 이들 말고도 지구의 종말,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여러 인간군상들이 등장한다.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야 방공호를 파고 그 안에서 여러날을 버틸 수 있도록 마련해놓기도 하고, 그냥 마지막 순간까지 대충 즐기다 죽자는 사람도 있고, 미리 자살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대답하기 어렵다. 그 어떤 도덕적 잣대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불가항력적 이야기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세상의 끝까지 21일 (2013)

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 
7.5
감독
로린 스카파리아
출연
스티브 카렐, 키이라 나이틀리, 코니 브리튼, 아담 브로디, 패튼 오스왈트
정보
코미디, 드라마, 로맨스/멜로 | 미국 | 102 분 | 2013-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