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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시움 - [리뷰] 차별받지 않는다는 것의 소중함에 대하여

효준선생 2013. 8. 16. 06:00

 

 

 

 

 

   한 줄 소감 : 이 영화가 느꺼웠던 이유는 지금 차별받고 있어서인가

 

 

 

 

key word // 평등, 평화, 공존, 차별, 고용, 의료의 공공성, 약속

 

 

 

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와 함께 처방전을 받는다. 약국에서 내주는 약봉지에는 약품명 뿐 아니라 약제비 총액과 본인부담금 그리고 보험자 부담금이라는 항목이 찍혀있다.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한달에 한 번 내는 의료보험료의 혜택으로 총액의 30% 정도만 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보고, 만약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혹은 엄청난 보험료를 내고도 평생 병원 문턱 한 번 밟지 않는 건강한 사람의 경우는 또 다른 생각을 하겠구나 싶다.

 

 

 


하지만 이건 한국에서만의 이야기라는 소리를 듣고는 놀랐다.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서도 이 정도의 의료와 관련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고 하며  특히 가난해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서민과 빈민들의 경우엔 심각한 후유증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의료의 공공성을 도외시한 채, 이른바 의료 민영화를 주장한 결과라고도 했다. 질병 앞에선 그 어떤 부와 명예도 부질없는 것임을 잘 아는 인간이기에 최소한 질병치료는 모두가 비슷한 수준으로 진료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영화 엘리시움을 보면서 머리 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 의료 공공성 확보 문제였다. 현재의 지구상에도 1%의 초상류층과 99% 나머지들의 혼재가 이런 저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면, 미래엔 아예 지구와는 별개의 공간을 마련하고 잘사는 사람은 그곳에서, 못사는 사람은 폐허만 덩그러니 남은 지구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야 한다.

 

 

 


영화 속 지구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일상을 보자. 허름하다 못해 바람이라도 불면 무너질 것 같은 시멘트 벽돌집에서 기거를 하고 아침엔 공장으로 일을 하러간다. 잠시라도 빈 틈을 보이면 해고의 위협이 떨어지고 수시로 비인권적 불심검문을 받아야 한다. 주인공 맥스의 일상이다. 불심검문을 받다 사람도 아닌 기계경찰에 의해 팔이 부러지고, 위험천만한 노동현장에서 방사능 피폭을 당한다. 그에게 남은 건 5일 간 살수 있다는 시한부 선고와 진통제 한 병, 그리고 해고장이다.

 

 

 


만약 지금 이런 경우에 몰리는 노동자가 있다면 난리가 나겠지만 영화 속 이들의 삶은 순응하거나 엘리시움에 있는 놀랄만한 치료기계를 사용해 보는 것 뿐이다. 영화 초반 바로 이 치료기계의 엄청난 효능을 맛보기로 보여준다. 그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예를 들어 얼굴 전체가 수류탄에 맞아 날아가도, 심지어 백혈병이나 사지가 절단된 경우에도 스캐닝 한 두 번이면 원 상태로 돌아간다. 기적의 의료기기지만 엘리시움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집에 한 대 씩 놓고 사는 일반 가전용품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구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림에 떡이다. 일단 엘리시움으로 간다는 자체가 죽음을 불사하는 것이고, 기계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시민증 코드가 없으면 가봐야 헛물이다.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고급진료의 독점인 셈이다. 병원에 가면 별의별 특진항목들이 많다. 돈을 더 내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그런건 의료보험 적용도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체념한다.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기왕에 세상에 태어나 살다 가는 거 아프지 않고 사는 걸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누구는 돈이 많다고 또 누구는 돈이 없다고 기본적 생존권에 해당하는 권리를 차별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제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고 뜯어 고치고 싶어 할 것이다. 분노나 공명심의 발로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주인공 맥스는 고아출신이다. 인간이 벌인 전쟁의 후유증이다. 지구에 남아 공장 일을 하며 하루 벌어먹고 사는 걸로 만족했다면, 좀 더 큰 일은 아마 한참 뒤에서야 가능했을 것이다. 목숨 아깝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맥스의 선택은 그저 마음에 두고 있던 한 여자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고, 최소한의 평등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 감독의 대변(代辯)이기도 했다.

 

 

 


엘리시움은 이상향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물량으로 조성한 인위적 공간이 과연 이상향이 될 수 있는 건지, 시민이라는 타이틀로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세상이 결코 이상향은 아닐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 뜨겁게 달궈진 지구에서 엘리시움을 만들기는 불가능 한 것일까 비단 영화에서 예로 든 의료 공공성만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는 강력한 사회적 함의와 SF영화로서의 품격을 담고 있고 상당히 공을 들인 연출이 돋보이는 수작이라 하겠다. 전작 디스트릭트 9에 이어 이번 영화 엘리시움을 통해 홀로서기에 성공한 감독 닐 블롬캠프의 팬은 확실히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엘리시움 (2013)

Elysium 
9.1
감독
닐 블롬캠프
출연
맷 데이먼, 조디 포스터, 알리스 브라가, 윌리엄 피츠너, 샬토 코플리
정보
드라마, SF | 미국 | 109 분 | 201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