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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 - [리뷰] 열차 안은 또 하나의 뜨거웠던 지구

효준선생 2013. 7. 23. 08:30

 

 

 

 

 

  한 줄 소감 : 4년을 기다린 영화, 이토록 집요하게 인간 속내를 건드릴 수 있을까

 

 

 

 

Key word // 인간본성, 결핍, 부와 빈, 희노애락, 변혁, 세기말적 담론, 나르시시즘, 균형과 질서유지

 

 

 

 

택받은 자들의 끝이 없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17년 동안 열차는 달렸고 앞으로도 얼마를 더 달려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열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지구에 살았던 마지막 생존체라고 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열차 밖의 세상은 더 이상 살 수 없는 버려진 공간이었다. 오랫동안 그러려니 순응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질서가 조금씩 균열되기 시작한 건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영화 설국열차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09년 여름 전작 <마더>가 한창 상영일 무렵 매체들은 앞 다투어 이 영화의 연출자인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상이했지만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같았다. 다음 작품에 대해 간단하게 구상을 말씀해주신다면? 설국열차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고 제 머릿속에서만 있습니다. 개봉은 2013년일 듯 싶습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고 2013년이 되었다.

 

 


 

영화 설국열차의 시작은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지구 온난화로 고심한 끝에 지구를 냉각화시키는 물질을 대량으로 살포하자 이젠 도리어 한파가 몰아닥치게 되었고, 그 옛날 공룡이 졸지에 멸종했듯이 인류에겐 더 이상 살 곳이 없게 되었다. 설국열차는 바로 이 상황에서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얼마간의 가진 자들을 탑승시킨 채 지구에 남겨진 철궤를 순환하기로 했다.


영화에선 비주얼로 어떻게 해서 맨 뒷 칸에 무임승차가 가능했는지를 보여주거나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무수한 재난 영화들을 떠올려 보면 살기 위해 악다구니처럼 몰려든 일군의 사람들이 운 좋게 올라 탄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들에게 탑승이후 생존에 대한 보장은 없었다. 더불어 이 열차에 예약 탑승을 한 자들도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들과 이들의 차이에 어디에 있었을까?

 

 

 

 

경제력이다. 유일한 생존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선 많이 가진 자들에게 우선권이 돌아갔을 것이다. 열차 안에서의 생활방식이 순차적으로 보이는데 가관이었다. 의식주들의 수준차, 그리고 그들의 생활마인드 자체가 같은 열차에 탑승하고 가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 경제력의 차이는 상대적인 것이다. 만일 맨 뒷 칸의 무임승차자들에게 변혁의 마인드 없이 자기들끼리, 던져주는 단백질 덩어리만을 삼키며 연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부와 빈의 비교는 애당초 있을 리 없었다. 영화에서 총리로 나오는 자는 이를 원래부터 각자가 가지고 있었던 몫이자 전체로 보았을땐 질서와 균형이라고 말했다.

 

 

 


사회학 개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한 번 돌파를 시도한 그들이 목도한 것은 같은 열차 안에는 모두 같이 빈곤한 삶만 존재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들에겐 뜻밖의 발견이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통치자들과 부자들에겐 통제가 요구되는 사안이었다. 이른바 적극적인 사다리 걷어차기는 이때부터 불을 뿜는다.

 

 

 

 

이 영화에서 액션은 살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죽여야 하는 것이고 직진 말고는 방법이 없는 좁은 열차 안에서 항복이나 투항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되면서 겪는 정신적 충격은 그 안에서 무려 17년을 살아왔던 사람들에겐 알 수 없는 모멸감에 가까웠다.


이들의 돌파가 거듭되면서 드러나는 현상은 가난한 자들이 흥청망청 잘 사는 사람을 죽이는 장면들이 아니었다. 마치 스쳐지나듯 보이는 수많은 공간들은 앞선 맨 뒷 칸의 블랙, 조금 좋게 말하면 초코렛 빛깔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파스텔 톤이 도는 유치원과 식물원, 의상점, 치과, 사우나실, 클럽, 심지어 수족관에 일식코너까지 보였다. 하지만 이런 공간을 지나면서 처음 시작했을 때의 투지는 점점 무력화되었다. 결승점이 저기에 있으니 좀 더 분투하자가 아니라, 세상은 이렇게 화려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했었나 하는 허무함이 물씬 느껴졌다.

 

 


 

최후의 승자를 추켜세우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열차를 구동하는 최후의 힘이라 할 수 있는 엔진을 차지하고픈 자와 아예 열차 밖으로 나가보려는 자의 마주침에서 특정 선택을 하고 나자 몰려드는 건 뿌연 안개 속에서 반짝거리는 아주 작은 형광물질 정도였다. 그 작은 빛을 따라 인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설국열차만이 구원이라고 믿었던 그들에게, 열차 밖 세상을 살아 본적도 없을 아이들에게 지금 기성세대들이 꾸려가는 세상은 결국 포기에 준하는 명령이었을까?      

 

 

 

 

영화 설국열차엔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어려서부터 엔진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던 소년의 꿈이 지금을 만들었고, 그 설국열차에서 인생을 향락하는 혹은 연명하거나 기생하는 부류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살고 있었다. 어른들은 어른대로 열차 밖 세상과 지금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생명조차 누군가의 한 줌 먹이감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거두지 못한 채 살고, 심지어 기계 부품으로 대신되어야 하는 삶이 그들을 기다린다는 절박함 속에서 산다. 또 누구는 저 건너편 세상이 너무 궁금해 변혁을 부르짖고, 또 누군가는 그에게 동조한다. 이들의 삶 중에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다른 각자의 가치관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영화에선 균형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다. 그리고 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자연계에서 볼 수 있듯 自淨作用이었다. 汚水를 품어도 결국은 언젠가는 淸淨水가 되는 것처럼 한정된 공간에 제 아무리 많은 인간들이 타고 있어도 절대로 열차가 멈추지 않는 건 서로가 서로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했다. 무한대로 번식만을 추구하는 바퀴벌레와는 또 다른 속성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바퀴벌레 보다 잔악한 본성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현명한 것일까 설국열차에 탑승할 기회가 생긴다면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그 본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설국열차 (2013)

Snowpiercer 
8.7
감독
봉준호
출연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정보
SF, 액션, 드라마 | 한국, 미국, 프랑스 | 126 분 | 2013-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