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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르마이 로마이 - [리뷰] 동서양 문화 충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다

효준선생 2013. 7. 17. 09:00

 

 

 

 

 

   한 줄 소감 : 일본과 고대 로마제국은 목욕문화가 닮았군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만큼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간절히 원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를 옥시덴탈리즘이라는 좀 있어 보이는 단어로 치환해봐도, 잘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있다. 바로 옆 나라 이야기임에도 이렇게 먼 이야기로 들리건만 로마제국시대를 바라보는 일본의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로울까?

 

 


서기전 로마제국과 오늘날의 일본을 목욕이라는 키워드로 한데 묶어 역사의 한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 영화 테르마이 로마이는 이른바 하이브리드 계열의 영화다. 전반부는 로마의 인테리어 건축가를 등장시켜 수시로 타임리프하게 만들어 그렇게 얻어낸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한다는 코미디로 관객을 웃겼다면, 후반부는 로마제국의 14대 황제와 그의 후계를 둘러싼 황궁 안에서의 권력 암투를 비교적 서사적으로 그려내며 역사엔 가정이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해 본다.

 

 


그토록 부강했던 로마가 목욕문화로 대변되는 사치와 향락으로 패망의 길을 걸었다는 이야기와 오히려 치유를 목적으로 한 온천개발을 해서 상처입은 병사들을 다독이며 왕권을 강화했다는 이야기는 상충되면서도 의미하는 바가 있다. 사회가 전쟁을 겪으며 재정립의 시간을 갖게 된다면 언젠간 사치풍조의 만연은 도래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헤게모니를 쥔 자의 현명함과 백성을 보살피려는 자상함은 분명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역사 코미디 장르지만 오늘날의 일본에서의 이야기도 의미심장하다. 데뷔도 못한 채 알바를 뛰는 만화가를 꿈꾸는 젊은 여성을 등장시키는데 그녀는 거의 하루 종일 동네 노인들과 한담이나 나누는 목욕탕 집 딸이다.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노인들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박식함을 전달해주고 인맥을 통해 그녀가 궁금해 하는 것을 해소시킨다. 그녀가 만화가로 등단하게 되는 계기도 결국은 다양한 경험의 결과다.

 

 


만약 고대 로마 역사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하면 어느날 갑자기 욕조 속에서 튀어나온 홀랑 벗은 건장한 몸의 사내를 치한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로마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한 장면을 얘기해 주는 것도 타임슬립 영화의 금기라 할 수 있는 역사를 거슬리는 게 아니라 이미 정해진 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다.

 

 


영화 초반 만화잡지 편집장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 만화는 그림 좀 그린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그럼 뭐가 부족한 걸까? 바로 “이야기” 라는 제대로 된 서사(敍事)가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가 고대 로마에서 온 남자를 만나고,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접촉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때 이야기는 비로소 풍성해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꾸 만화의 이야기를 언급한 건 이 영화가 야마자키 마리의 동명의 만화를 기초로 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시대와 오늘날의 일본,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지만 이야기를 엮어 내려는 기발함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낸 셈이다. 로마 사람보다 더 로마 사람처럼 보이는 아베 히로시를 중심으로 당시의 목욕탕 문화와 일본의 목욕문화가 혼용되면서 발생하는 유머 코드와 여백이 생기면 바로 채워 들어가는 베르디의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이 대차다. 엔딩까지 다 음미하고 나올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영화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테르마이 로마이 (2013)

Thermae Romae 
7.7
감독
타케우치 히데키
출연
아베 히로시, 우에토 아야, 이치무라 마사치카, 키타무라 카즈키, 시시도 카이
정보
코미디 | 일본 | 108 분 | 201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