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소감 : 화면에서도 고소공포가 느껴질 정도.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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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웅위로운 만큼 산이 주는 경외감도 크다. 멀리서 보이는 산봉우리와 능선은 마치 달력 사진에서 보듯 그저 멋지다 라는 형용사로 만족하지만 그 산 안에 있을 때 자연이 이토록 두려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한다. 많은 산악인들에게 왜 그렇게 무섭고 두려운 산에 오르냐고 묻는 다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남들은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른다고 하지만 아마 숙명같은 게 아닐까”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영화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는 1997년 파키스탄에 속한 히말라야 연봉 중의 하나인 가셔브롬 4봉을 성공적으로 등반한 등반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이미 한 차례 실패한 바 있는 1995년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17,8년 전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들은 이들의 등반이 지독하게 어렵다거나 숨막히는 스릴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워낙 베테랑들의 등반인지라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영상으로 옮겨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요즘은 장비도 좋아져서 공중파에서도 산악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상시적으로 나오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럴 여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화질은 약간 낡았다 해도, 악천후 속에서 산을 오른다는 사명감 외에 그 장면을 찍는 다는 것을 부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는 아마 그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등반 과정만으로 보여주려는 트래킹 가이드는 아니었다. 등반 도중에 사망한 슬로베니아 산악인과의 에피소드, 남의 나라의 얼굴도 본 적 없을 산악인임에도 산에서 죽은 그를 위해 의미있는 위패를 세워주고 한국식으로 제사도 올리고 그리고 2년 뒤 보은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리고 가셔브럼 4봉 완정이후 찾은 산행길에서 대원을 잃게 된 사연들이 나오자 이내 숙연해지고 말았다.
산악인들에겐 산이 연인이자,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혹은 무덤이 될 지도 모른다. 이 영상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지금 어찌 사는 지도 소개가 되는데, 어쩌면 하나 같이 산과 완전 동떨어져 살지 못하는지, 그런게 바로 숙명인 듯 싶다.
요즘은 건강을 위해 산행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영화를 보고 지하철을 탔는데 음주를 거하게 한 한 무리의 등반객들이 소란스레 떠들며 오늘의 무용을 자랑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비롯해 삶의 의욕을 상실한 자들에게 이 영화를 조심스레 권해보고 싶다. 높은 곳에 오른다는 건 산을 정복했다는 게 아니라 산이 당신에게 정신 좀 차리고 살라며 기회를 준 것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해발 7,925m의 가셔브럼 4봉, 두 번에 걸친 도전 끝에 기어코 코리안 다이렉트라는 이름을 얻어낸 그들의 등반기록, 정상 부근에서의 영상기록이 소실되어 추후에 논란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그곳에 오른 것이 아니라며 논란을 확대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는 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지날때마다 다른 사람들의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때를 회고하면 자랑스러울 밖에 없고, 그때의 대원들이 지금 봐도 피를 나눈 형제처럼 느껴진다면, 그들의 삶은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산이 그들에게 나눠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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