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마스터 - 나와 함께 가지 않으려나?

효준선생 2013. 7. 10. 09:00

 

 

 

 

 

  한 줄 소감 : 이른바 상흔(傷痕)영화의 진득한 예

 

 

 

 

 

 

쟁은 언제나 할 때보다 한 뒤의 후유증이 크다. 아마 살아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가 상처를 덧붙여 지금도 회자되고 있어서일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청년들이 다시 세상에 복귀했을때, 세상은 그들을 전쟁 영웅이라고 칭송했지만 그 뿐이었다. 몸에 입은 상처는 치료를 받으면 언젠가 낫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심장에 각인되어 잘 사라지질 않는다.

 

 


영화 마스터의 주인공 프레디 역시 그런 부류였다.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 일이랍시고 전쟁터로 나가는 바람에 다시는 해후하지 못한 채 세상에 다시 던져졌다. 사진찍는 기술을 배운 그는 백화점 한 귀퉁이에서 증명 사진을 찍어주며 호구지책을 삼고 살지만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타인에 대한 공격성 때문에 그곳을 떠나야 했다. 양배추 농장에서도 말썽만 일으킨 그는 몰래 얻어 탄 배 안에서 자칭 심리학자라고 하는 랭커스터를 만나 인생을 다시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이 영화에서 마스터라고 불리는 사람은 바로 이 사람 랭커스터다. 그가 학위를 가진 학자인지는 불분명하다. 사람들을 마치 최면술에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문하는 걸 보면 마치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 같아 보인다. 몇몇은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프레디에게 그는 자신을 알아봐 주는 세상에서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게 프레디가 랭커스터를 떠나지 못한 이유다.

 

 


영화 중반부 세상사람 들의 인지를 받아가며 마치 출장 선교라도 하듯 사람들의 영적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등장한다. 프레디 역시 이의 경험자였다. 프레디는 그의 식객이자 문하생처럼 여겨졌다. 랭커스터에게 모나게 구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는 주먹질부터 해댔고, 둘의 관계는 그런 과정을 통해 점점 공고해졌다.


1950년대 세상은 전후 복구와 퇴폐주의로 만연했던 분위기가 일소되고, 개인적 플레이에 빠져들었다. 실제 존재하는 사이언톨로지와 비슷한 유형의 코즈도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 랭커스터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가는 과정은 비단 프레디 한 사람의 심신을 달래주기 위한 방책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슴에 얹고 살고 있으며 그걸 다른 사람들이 경청해주길 바랬다. 프레디가 벽과 유리창을 무수히 왕복하며 자신의 소감을 토로하고 결국 랭커스터의 품에 안기는 모습이 대표적이었다. 어쩌면 그 벽과 유리창이 그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격리공간이었을 것이다.

 

 


랭커스터는 프레디에게 제안한다.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삶, 어쩌면 마스터는 유한한 랭커스터가 아닌 그 보다는 오래 살 수 있는 프레디에게 넘겨진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침대에서 그는 하룻밤 상대인 여인에게 묻는다. 반복적인 질문, 그리고 허탈한 웃음. 그 옛날 프레디가 만든 정체불명의 밀주를 나눠마시며 통음을 하던 때가 연상된다.

 

 


이제 불안은 어느덧 가신 셈이다. 전후 비틀거리던 세상에 부평초처럼 떠돌며 살던 프레디 같은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을 붙잡고 그 방향이 어디든 이 세상에 착근하고 살 수 있게 도와준 기성세대들. 미국은 비록 승전국임에도 이러할 진대 전쟁이라는 참혹함과 폐허 속에 나뒹굴며 견딘 우리들의 조력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마스터 (2013)

The Master 
9.2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호아킨 피닉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이미 아담스, 로라 던, 래미 말렉
정보
드라마 | 미국 | 138 분 | 2013-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