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아이 오브 더 스톰 - 먼길 가기 전에 챙겨야 할 인생의 추억들

효준선생 2013. 6. 16. 09:00

 

 

 

 

 

  한 줄 소감 :  삶의 관조, 지나온 세월에 대한 고해성사 같았던 그녀의 눈빛

 

 

 

 

 

반도 상공에 태풍이 올라올 때가 되면 사람들은 전전긍긍한다. 시골에선 농작물 피해를, 도시에선 창문이라도 깨질까봐서 말이다. 만약 태풍이 한반도 한 가운데로 상륙하는 날엔 여지없이 곡소리가 나곤 한다. 그만큼 자연재해는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분명 태풍이 지나간 자리인데 말짱한 곳이 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피해도 없는. 기상학자들은 그걸 태풍의 눈이라고 불렀다. 태풍의 눈에 들어가면 태풍 본연의 모습을 감춘다고 하니, 정말 자연은 위대하다.

 

 


영화 아이 오브 더 스톰은 바로 이 태풍의 눈에 자리한 어느 상류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호주 영화인 이 영화는 마치 영국의 어느 귀족 가족을 그리는 것 같은 분위기다. 대 저택, 수하엔 일을 거드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진 것 많은어느 노인은 오늘 내일 하지만 그녀에게 아들과 딸은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이다. 아니 그녀의 아들과 딸이 그녀를 그렇게 느낄 것 같다.


영화는 임종을 앞둔 어느 노파의 일상을 그린다. 억지춘양격으로 집에 오긴 했지만 병문안 보다 간호사와의 썸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중년의 아들, 동네를 돌며 친구를 만나고 쇼핑을 하고 포스트 마더를 생각하는 딸, 대체 이들 가족은 지금껏 어떻게 살았기에 이 모양일까?

 

 


자신을 공주로 불러주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오랜만에 찾았지만 딸은 고향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저 하루속히 이곳을 떠나고 싶을 뿐이다. 프랑스에서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지만 오랜만의 호주행은 어쩐지 부담스럽기만 하다. 난봉꾼 기질이 다분한 아들은 한술 더뜬다. 간호사와의 하룻밤, 그리고 이별, 그 역시 유산에 더 큰 관심을 갖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가족은 그렇다 치고, 노파를 간호하는 사람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다. 간호사는 아들과 눈이 맞았고, 정원사는 맨날 무뚝뚝한 얼굴로 기도만 하고, 독일 출신 요리사는 노파앞에서 독일 노래와 춤을 춰가며 흥을 돋우지만 갈수록 지친다. 그리고 결정적인 건 호시탐탐 노파가 가진, 돈이 되는 것을 노린다는 점이다.

 

 


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화제거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도 죽음을 앞둔 노파 이야기를 우울하게만 그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까닭도 있지만 대개 영국과 호주 출신들의 배우들이 뽑아내는 연기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병세가 점점 완연해져가지만 자신이 갖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재정리하는데 여념이 없는 노파역할의 샬롯 램플링은 배우에게 나이란 사회가 주는 숫자에 불과함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퀭한 눈빛의 환자로 타인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매일 색색의 가발을 쓰고, 오버랩으로 보이는 과거의 장면에선 50대의 매력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그녀의 죽음이 남겨진 자들에게 어떤 마음의 변화를 가져왔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죽기전에 풀고 싶었던 삶의 앙금들이 그녀의 바람대로 모두 풀어졌는지, 태풍이 지나가는 한 가운데서도 용케 살아남은 그녀의 의지력이 돋보이듯, 인생은 모두 마감하고 나서야 알 일이다.   

 

 


이 영화가 청불인 이유는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장면들 보다 은연중에 담겨진 설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 그리고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에서 비롯된 과거사인데,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을 더 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그것들이니 감안하고 봐야할 듯 싶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아이 오브 더 스톰 (2013)

The Eye of the Storm 
9.5
감독
프레드 쉐피시
출연
제프리 러시, 주디 데이비스, 샬롯 램플링, 알렉산드라 스체피시, 존 게이든
정보
드라마 | 오스트레일리아 | 117 분 | 2013-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