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홀리 - 우리 함께 춤을 출까요?

효준선생 2013. 6. 15. 09:00

 

 

 

 

 

   한 줄 소감 : 힘든 여건이지만 이렇게 밝게 자랄 수도 있다

 

 

 

 

 

 

20세기 전반기는 일본과, 20세기 후반기는 미국과의 접점을 통해 한국이 존재했다면 그 공과(功過)의 후유증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덮어두고 싶은 치욕의 상처들이 덧나거나 혹은 딱지를 얹은 채 흉터로 남은 이유는 과거완료가 아닌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기지촌의 양공주(여주인공 홀리의 정확한 직업은 미군 기지촌 클럽의 댄서일뿐 양공주라는, 부정적 의미의 일을 한다는 직접적인 묘사는 없다), 영화 홀리의 배경이다. 인물이 배경이 될 수도 있는 드문 경우인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약간의 상식만 있다면 그 단어가 주는 복합적이면서도 음울한, 그래서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 생경한 오브제가 된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그들을 보면서 희희덕거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자신을 일컫는 그 단어들이 더 이상, 퍼져나가는 걸 원치 않는다.

 

 


영화 제목인 홀리는 이런 이유로 우울한 분위기가 압도할 것 같지만 그런 정도는 아니다. 그 노력은 홀리라고 불리는 기지촌 댄서와 그녀의 딸 완이가 엮어내는, 현실순응과 현실극복의 과정들이 슬프게만 전달되지 않아서였다. 험한 일을 하는 엄마를 둔 완이에게 엄마는 기피나 혐오의 대상만이 아닌, 마치 곁에 두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다. 물론 엄마 홀리도 딸 완이는 자신이 존재하는 거의 유일한 이유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내재적 분쟁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바로 과거의 사연이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내달릴 때 그림자처럼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차꼬를 어떻게 떼어낼 것인지 고민하는 홀리의 심중에 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제 3자의 인물, 박수진은 홀리와 마찬가지로 기지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미국으로 입양되서 거기서 발레리나로 양명(揚名)한 입지전적인 캐릭터다. 그녀의 존재는 엄마말고는 의지할 곳 없는 완이에겐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물꼬인 셈이다. 완이는 그걸 순수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홀리는 과거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망설인다. 그리고 그 기구했던 사연들이 조금씩 흘러나와 마치 얇은 종이에 물이 배어드는 것처럼 만들었을 때의 정감은 분명 한국적이다.

 

 


홀리는 외양으로는 무척 강하다. 어쩌면 단 한번도 기지촌을 떠나본 적도 없는 지 모른다. 같은 춤꾼이면서도 하류인생을 사는 것 같은 자신과, 어린 시절 언니처럼 의지하고 싶었던 수진이 불쑥 찾아와 상류인생을 이미지하는 발레리나의 삶을 자신의 딸과 영유하겠다고 했을 때의 상실감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도미(渡美)가 여러 사람에게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주었을 때가 있다. 수진처럼 어린 시절 미국인에게 입양되어 가거나, 기지촌에서 미국남자를 만나 초청방식으로 미국에 가서 팔자 펴보겠다고 허황된 꿈을 갖거나,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선택하는 경우들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주는 처량함은 시간이 흘러도 잘 퇴색되질 않는다.

 

 


이제 홀리는 이 땅에 남아 더 이상 갈 수 없는 행보를 끝내야 하고 완이는 다른 땅으로 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기록하려고 한다. 엄마라는 역할을 이로써 완수하게 된 홀리의 뒷모습이 애잔하고도 힘겨워 보인다. 영화 홀리는 세 여인의 다소 기구한 인생역정을 담아낸 영화이기도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가 짊어진 비루한 이면의 작은 덩어리를 내보인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홀리 (2013)

Holly 
9.1
감독
박병환
출연
민아, 신이, 정애연, 경수진, 전병철
정보
드라마 | 한국 | 105 분 | 2013-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