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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리 크뢰이어 - 광기의 피사체로 살아야 했던 여인의 속사정

효준선생 2013. 6. 11. 09:00

 

 

 

 

 

  한 줄 소감 : 누군든 그녀가 되어보지 않은 이상 쉽게 재단할 수 없을 듯

 

 

 

 

 

19세기말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세버린 크뢰이어는 덴마크의 스카겐 예술가 마을에 정착하며 바닷가를 중심으로 소요하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 빛의 예술이라는 테마에 유난히 집착한 그는 다른 화가들이 생전에 주목받지 못한 것과 비교해 나름대로 인정받는 실력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그의 그림은 잘 팔리는 것 중의 하나로 그가 사는 저택을 보니 당시로서는 크게 부족함이 없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예전 화가들이 요절을 한 경우가 많은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사용하는 물감에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제한된 공간에서 유독성 화공물질이 다량 함유된 유색 물감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그들의 중추신경계를 서서히 마비시켰을 것이며 그로인해 드러나는 초기 증세는 신경쇠약이나 불안, 망상같은 것들이었다.


영화 마리 크뢰이어는 덴마크 영화다. 낯선 덴마크어가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첫 번째는 바로 이 세버린 크뢰이어(쇠렌 세터 라센 분)의 과대망상과 조울증에 대한 표현 때문이었다. 영화가 시작된 직후부터 그가 보이는 증세는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젤 앞에 앉아 있는 그는 멀쩡해 보이지만 가족 앞에서의 그는 이른바 치료를 요하는 환자였고, 그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요양원에 들어가서도 좀처럼 나아진 기미는 없었다. 아마 당시 의료기술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두 갈래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버린의 부인인 마리, 그리고 스웨덴 출신의 음악가 휴고 사이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를 큰 틀로 두고 우선 세버린이 마리에 대해 자신이 품고 있던, 해서는 안될 말까지 퍼부으며 광기어린 행위를 보여주었다면 후반부에선 이런 세버린을 피해 찾았던 스웨덴에서 만난, 자신을 아껴줄 것 같았던 휴고라는 남자와의 아슬아슬한 멜로 라인이 그려졌다.

 

 


이들 사이에 딸 빕스는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고, 어린 그녀를 사이에 둔 인간으로서의 정과 법리로서의 양육권까지 언급되면서, 스릴러적 치정멜로로 치닫는다. 하지만 중심은 마리였다. 자신의 부정을 의심하고 정상적 가족관계의 훼멸에 이르게 만든 남편에 대한 애증이, 자신의 미술적 소질을 드러내는 데 꼭 필요할 지도 모르는 남편의 존재에 대한 의존이 겹쳐지면서 단순하게 바람피는 어느 화가 아내의 이야기로만 좁힐수 없게 만들었다.

 

 


세버린은 자신의 부부관계를 고르디우스 매듭에 비유했다. 난마처럼 얽힌 매듭을 풀기 위해 힘으로 잡아당기려고만 해서는 점점 더 풀기 어려워지는 매듭의 유래처럼, 그렇다고 단칼에 잘라 버릴 수도 없는 난감함. 그가 제 정신이었을때 뱉었던 이 말처럼 이 영화의 해법은 어쩌면 세버린의 죽음으로 풀리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환호했고, 아내의 미모에 찬사를 보냈다. 그의 작품에 유난히 아내 마리의 초상이 많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그는 아내를 모델로서 인정했을뿐 결코 동일선상의 화가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마리는 남편의 정신병으로 인해서는 그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스스로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재주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남편을 보는 순간, 그리고 그런 그녀를 있는 그대로 예쁘게 봐 준 다른 남자와 비교하는 순간, 그녀는 움직였다.

 

 

 


예술은 실체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마리는 세버린 크뢰이어의 작품 속에서 튀어나 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그리는 도중의 세버린에게 그녀는 어떤 의미였을까? 사업가를 그리는 것처럼 겉모습만 그리는 손쉬운 모델이었을까? 아니면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어부의 모습처럼 어렵게 느껴진 모델이었을까?


이 영화는 당시를 재연한 의상과 건축양식이 참으로 곱다. 비록 광기와 치정에 밀려 그런 것들을 상세하게 눈에 넣지 못한다면 그것도 아쉬운 일이다. 최근에 한국에 소개되는 덴마크 영화들의 옹골참에 다시 한번 놀랄 뿐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마리 크뢰이어 (2013)

Marie Kroyer 
9.5
감독
빌 어거스트
출연
비르기트 요르트 소렌슨, 쇠렌 세터-라센, 스베리르 구드나슨, 르네 마리아 크리스텐슨, 토미 켄테르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덴마크 | 98 분 | 2013-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