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 동네 바보형의 좌우명, 고저 평범하게

효준선생 2013. 5. 28. 07:30

 

 

 

 

 

   한 줄 소감 : 아저씨, 의형제, 간첩 이런 영화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올랐다

 

 

 

 

 

린 시절 뛰어놀던 골목 안, 전신주마다 이런 표어와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간첩신고 얼마, 멸공, 방공방첩, 그리고 쥐를 잡자, 하나만 나아 잘 기르자. 그리고 검정고시등. 학교에선 이런 주제로 늘상 포스터를 그리게 강요했고 조금 나아보이면 공책도 주곤 했다. 머릿속엔 당연히 이런 일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자리했고, 머리통이 어느 정도 굵어지기 전까지는 계속되었다. 심지어 친구중에는 간첩선을 찾는다고 가출까지 한 녀석도 있었다. 아마 엄청난 현상금을 노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단국가인 건 마찬가지고, 정보의 유입이 빨라지고 먹고 살만하게 된터라 그까짓 현상금 몇 푼(?)에 경거망동할 일은 없지만 간첩이라는 단어에 찍혀 있는 공포는 좀 있다. 그런데 그 간첩이라는 자가 우리 동네 바보형 쯤이라고 한다면 그래도 놀라워하며 우선 도망부터 칠까? 아니면 바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며 돌팔매질부터 할까? 온라인 유명 웹툰인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동명의 영화로 선을 보였다.

 

 


웹툰이 보장하는 그림빨을 영상으로 옮겨낸다는 게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겠지만 사전에 외부에 공개된 캐릭터들을 비교해 놓은 것들을 보니 이른바 싱크로(유사성)는 나쁘지 않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연기와 이야기의 설득력이다. 지난해 생활간첩의 이야기를 보여준 영화 간첩과 비교하면 이번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주니어 버전이다. 한국에 들어온지 2년차라고 하니 아직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고, 그들의 목적도 뭔지 잘 알려진 바 없지만 바보 행세 하나만큼은 제대로다. 콧물 흘리기, 골목에서 똥싸기등 화장실유머들이 초반에 등장하고 살고 있는 달동네 주민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슬슬 긴장감을 높여갔다.

 

 


웹툰의 전체 줄거리나 결말을 보지 못한 터라 뒷부분이 많이 궁금했다. 남파된 간첩이 바보 시늉을 해가며 얻어내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많은 역할 극 중에서도 왜 바보 역할일까? 그리고 달랑 혼자만 보내진 건 아닐텐데 그와 같은 임무를 띤 자는 누구일까 점점 궁금해진 것이 많아지는 가운데, 윗 마을에선 좀 이상한 지령이 내려왔다.


배우 김수현은 이 영화의 주인공 원류환(동구)으로, 그리고 극중 나레이터로 나온다. 의미를 찾아보자면, 자신의 남한 생활에 대한 당위성과 불만에 대해 제3자에게 털어놓는 것 같은 어투를 구사한다. 다소 코믹하면서도 때로는 진중하게, 비록 지금은 동네 바보형이지만 남파간첩이라는 사실에 대해 결코 잊은 바 없음을 목소리로 상기시켜 놓는다.

 

 


평안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특수목적파견된 간첩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역시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 한 어머니의 아들로 비춰진다. 그것이 북한에 있는 엄마인지, 아니면 한국에 내려와 운명처럼 조우하고 자신을 거둬준 엄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누군가에게 “나의 누구” 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 후반부 배우들의 호흡이 숨가빠진다. 대량의 몸싸움과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대치상황이 벌어지지만 여전히 그는 외친다.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겠냐고.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은 아니었다. 예전 같으면 사람 목숨 하나 제거하는게 일도 아니었건만 이젠 죽인다는 건 생각조차 하기도 싫고 죽기도 싫어졌다. 변화가 생긴 것이다.

 

 


싸우던 동구 옆에 떨어진 통장에 찍힌 그에 대한 "그녀"의 평가가 인상적이다. 동구, 우리동구,...그리고 우리 둘째 아들 동구...이 영화는 두 가지 화두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누구라도 변할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많은 걸 바라지 않아도 평범하게 살고픈 의지의 동물이다. 그런 이들에게 이 영화 속 간첩의 존재란 웃어도 깊게 웃을 수 없는 아스라함이다.


번듯한 강남 부촌 아파트나, 높은 사람들이 높은 담장을 쳐놓고 사는 고급 주택가가 아니라 허름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담장을 서로 의지한 채 살아가는 없는 달동네가 배경으로 나오는 이유는 자명하다. 좀 더 인간적으로 사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동네 바보형 동구(원류환)에게는 여기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는 그곳에서 무엇을 희망했었을까?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9.7
감독
장철수
출연
김수현, 박기웅, 이현우, 손현주, 박혜숙
정보
액션, 드라마, 코미디 | 한국 | 124 분 | 2013-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