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환상속의 그대 - 지금 내 눈 앞에 서있는 당신은 누구죠?

효준선생 2013. 5. 22. 08:00

 

 

 

 

 

  한 줄 소감 : 이젠 보내야 할 때도 되었소

 

 

 

 

 

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큰 길 건널목에 하얀 페인트로 흔적이 남겨져 있음을 발견하고는 일부러 밟지 않고 지나친다. 접촉사고도 많이 나고 예전엔 인명사고도 있었던 자리라고 이곳 터줏대감이 귀띔으로 알려주니 불현듯 오싹해진다. 내가 본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닐텐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사후 영혼의 존재에 대해 믿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였던 그곳을 차마 밟고는 지나치지 못하겠다. 겁이 아닌 死者에 대한 배려쯤으로 치자.

 

 


인명은 재천이라 하여 언젠간 정해진 날 저 세상으로 가는 것에 순순히 응할 수 밖에 없음이 사람의 숙명이라고 하지만 아직 살 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의 요절은 애처롭기만 하다. 당연히 주변사람들로서는 남겨진 아픔을 톡톡히 실감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 죄다 사라지기 전에.


영화 환상속의 그대는 바로 이 살아서 남겨진 자들에게 이미 죽은 자가 보내는 위문편지와 같은 내용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보다 못지 않은 우정을 나누던 여자를 둔 한 스물 몇 살쯤 된 플로리스트. 여전히 재기발랄하고 하고픈 일이 많았을 그녀가 고장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사고사 한 후,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겐 지독한 트라우마의 흔적을 남긴다.

 

 


죽으면 구천을 떠돌며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일들을 아쉬워 하거나 다시 저승으로 갈 준비를 한다고 하건만, 결코 산 사람 앞에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죽음은 삶과 갈라놓는 최후의 것이라 믿었기에 방금 전까지 산 사람과 죽고 못살듯 살갑게 굴다가도 죽은 자가 눈이라도 번쩍 뜬다면 혼비백산 하여 도망칠 것이 뻔하다. 그런데 그녀는 왜 여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자꾸 사랑했던 남자의 눈에 보이는 것일까? 


그녀가 사고를 당하기 전 고장난 자전거를 빌려준 친구에 대한 원망도, 친구와 애인의 미묘한 관계에도 크게 분노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마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 같다.  마치 죽지 않은 사람처럼 여전히 명랑쾌활해서 마치 이 영화가 꿈 속의 꿈을 그리고 있나 싶기도 했다.

 

 


흔히들 죽은 자에 대한 애도가 깊어져 불쌍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남겨진 사람들이 더 불쌍하다. 작은 일 하나에도 그와 했던 추억이 떠오르고,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웃겨 죽겠다고 웃어도 남의 일처럼 어깨가 축 처진다. 햇살 따사로운 날 벤치에 앉아 그녀에게 귀를 맡기던 추억도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지우고 싶은 이야기일뿐이다.


해서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나기도 하고,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삭제되는 간단한 게 아닌지라 자꾸 눈물이 난다. 그래서 죽은 자보다 남겨진 자가 슬프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세 친구의 이야기를 판타지처럼 그리고 있다. 연결고리는 많다. 직장도 되고, 꽃집도 되고, 그중에선 유독 돌고래들이 살고 있는 수족관이 많이 등장한다. 너른 바다가 아닌 그곳에 갇힌 돌고래와 정신적인 교유를 하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지만 돌고래는 유독 그녀와만 이런 행위를 한다. 하고많은 관람객들도 뿌리치고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녀와.


이 영화는 치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에 선 그녀를 애도하며 누군가는 마지막 그곳을 어루만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전거를 힘들게 타보기도 한다. 모두 이제를 극복하기 위한 힘든 발걸음들이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야기라 슬픈 것 아니냐며 미리 선을 긋고 볼 수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밝다.사고 당시를 재연하기 위해 피를 묻힌 채로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깨름하지만  그녀는 이제 살아 남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하는 의식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진짜 머나먼 길을 떠나려는 그녀에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 요즘 잘나가가는 이희준의 새로운 매력이 발산된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환상속의 그대 (2013)

8.8
감독
강진아
출연
이영진, 한예리, 이희준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10 분 | 2013-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