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홀리 모터스 - 인생은 단역배우처럼 사는 법

효준선생 2013. 4. 5. 07:30

 

 

 

 

 

   한 줄 소감 :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리는 살면서 몇 가지 역할을 할까 어느 부부의 수정란과 태아에서 시작해 영아, 유아, 소년기를 거쳐 학생이 되고, 수험생, 신입생, 졸업생으로 변신하고, 개중엔 군인이나 회사원으로, 시간이 지나면 원치 않는, 혹은 간절하게 원하는 사회적 직급에 맞춰 살아야 한다. 신입사원과 부장이 같은 모습은 아니다. 가정으로 눈을 돌리면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또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야 한다. 이 외에도 사회에서 혼자 살 수 없기에, 간혹 동창생으로, 채권자나 채무자로, 손님으로, 방문객으로 그렇게 살다가는 그리고는 시신으로 돌아간다.

 

 


일련의 삶의 과정, 단 하루만 따져봐도 우린 무수한 역할에 매인 몸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으면 글쟁이가 되는 것이고 누군가 이런 나를 좀 쳐준다면 작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은 수시로 바뀌는 이런 역할에 대해 심도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건 태생적으로 체득된 것들이다. 어떤 상황, 어떤 상대를 만나면 거기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걸 본능으로 알고 있다. 일부러 가르쳐 준 것도 아니다.


영화 홀리 모터스는 매우 전위적이다. 혹은 철학적이다라고 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모습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친숙한 일상의 편린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소 거북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는 나처럼 살지 않아서다. 멋진 리무진 차를 타고 다니며 하루 종일 도심을 횡행한다. 그의 차 안은 또 다른 역할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놀랍게도 한 사람이 연기한다. 차에서 내리면 그곳이 바로 사회가 된다. 어떤 상황과, 또 어떤 사람과 마주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에선 모두 9가지 상황이 펼쳐진다. 놀랍게도 단 하나도 한 인물의 역할로 보기는 어렵지만, 반드시 다른 인물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는 게 좋다. 극단적인 비유로 잘나가가는 사업가와 미친 광인의 모습이 결코 다른 사람의 모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사업가도 부도가 나고 거리에 쫒겨나 노숙자가 되고 심한 경우 영화 속 광인처럼 변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영화에서 인물이 자꾸 변장을 하는 건 다른 인물로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한 사람도 모종의 상황이 오면 그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역할을 좀 더 살펴보자. 모션캡처를 온몸에 붙이고 역동적인 몸의 움직임과 상대 여배우와의 에로틱한 연출을 하는 배우, 가시가 달린 붉은 모자를 쓰고 은행원을 암살하는 자, 한 여자 아이의 아버지, 죽음을 앞둔 노인, 사랑했던 여자와 조우하는 남자, 허리가 굽은 걸인, 아코디언 연주자등으로 변신하는 그의 모습이 놀랍도록 다채롭다. 그리고 한 역할이 보여주는 기괴함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결말부등.

 

 


하지만 각각의 역할과 다음 장면으로의 연계를 고민하는 건 무의미하다. 서로 싸우다 죽는 장면이 나온다 해도 바로 툭툭 털고 일어나 피가 묻은 얼굴을 닦아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과 옛 애인도 아무 관련이 없다. 영화는 순간적인 단편적인 역할 자체에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개그 콘서트를 재미있게 보고 나면 막간이 등장하고 경쾌한 밴드 음악이 그 사이를 메운다. 그럼 카메라가 돌아가는데, 쓰러져 있던 개그맨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음 코너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는 장면들이 얼핏 보인다. 바로 그런 역할을 이 영화에선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다.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영화 내내 운전을 하며 비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던 여자는 오히려 하룻동안 이 모든 역할을 소화해내며 연기한 오스카에게 돈과 하룻밤 묵을 공간을 마련해준다. 그리고 빈 차를 몰고 홀리 모터스라는 간판이 달린 차고로 들어간다.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 하루 종일 마치 동물원에서 자신을 찾아준 관객을 위해 쇼를 하고 난 침팬지처럼 또 갇히는 신세가 될 뿐이다. 운이 좋으면 다음날 다시 또 다른 역할을 해내는 배우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많고 화면도 어둡다. 1인 다역으로 나오는 배우에 익숙하지 못하면 역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을 만큼 분장쇼에 가깝다. 그러나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삶이라는 게 얼마나 가식적이고 공고하지 않음을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레오스 카락스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구성으로 우리 앞에 펼쳐보인다. 엔딩에 나오는 차고지 안에 주차된 자동차들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우리와 별로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장르 그로테스크 시츄에이션 드라마

  수입 배급  오드(AUD)

  홍보 호호호비치/ 투래빗

   

 

 

 

 


홀리 모터스 (2013)

Holy Motors 
8.1
감독
레오스 카락스
출연
드니 라방, 에바 멘데스, 카일리 미노그, 에디스 스콥, 미셸 피콜리
정보
드라마 | 프랑스, 독일 | 115 분 | 2013-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