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후세 말하지 못한 내 사랑 - 인연에 대한 알싸한 이야기

효준선생 2013. 3. 24. 07:00

 

 

 

 

 

   한 줄 소감 : 다양한 이야기꺼리, 손에 잡힐 것 같은 색감

 

 

 

 

 

 

음부터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었는지 모른다. 여자 사냥꾼과 개의 핏줄을 가진 남자와의 그것은. 그런 연유로 애착은 영화 전편에 흐르고, 예견된 이별의 슬픔은 어떤 방식으로 그려질까를 확인하는 과정만 남았다.


이종교배에 대한 궁금증은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자기처럼 움직이는 생명체 중에 인간은 가장 나약한 존재였다. 맹수들처럼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고, 초식동물처럼 날래게 달리지도 못하고, 맹금류처럼 하늘을 훨훨 날지도 못한다. 제 몸을 건사하기 위해 주변에 널린 돌과 나뭇가지를 들어보지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불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도 그들처럼 이 험난한 자연 속에서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그들을 신성시하며 숭배도 해보고 그들을 잡아 섭식(攝食)도 해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약 그들의 피를 나눌 수 있으면 혹시 좀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미치자 두려워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인간은 어느새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인간과 동물과의 이종교배는 과학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이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구전되기에 좋은 소재임에 틀림없다. 그것들이 주는 환상이라거나 호기심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맹수들이 사라지는 건 그들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기 때문이며 그런 이유로 동물적 흉폭함을 가진 인간들이 많아진다고 까지 언급되고 있다. 정말 요즘들어 발생하는 사건들의 범인들은 동물 환생의 결과물일까


영화 후세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개의 혈통을 가진 훈남 청년과 시골 출신의 사냥꾼 소녀간의 애틋한 연정을 그린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피를 빨아 먹지만 후세라고 불리는 이들은 인간의 생령(生靈)을 꺼내 먹으면서 생존한다. 영화에서 마지막 후세라 불리는 시노는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의 최후에 그들의 가슴팍 근처에서 붉은 기운이 도는 액상의 어떤 것을 꺼내 먹는 장면들이 나온다. 흔히 심장 정도로 인식되는 그것은 개와 인간의 모습을 절반 씩 갖춘 자들을 유지시켜주는 에너지 원으로 그려진다.

 

 


에도시대는 일본 최고의 전성기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가라앉히고 내치에 힘써 무엇보다 백성들에겐 풍요와 희망의 시절이었다. 시골 소녀 하마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오빠를 찾아 왔다가 우연히 후세 시노를 만나게 되고, 이즈음 시작된 사춘기의 끝자락을 사랑모드로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시노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들고 일어나 잡아 죽어야 마땅한 존재였으며 하마지에게 그건 험로에 갇힌 외통수 선택이었다.


영화는 에도시절의 화려함을 잘 표현했다. 수많은 직업군들을 묘사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감을 동원해 빈틈없이 채워넣었다. 동양화 기법의 여백의 미 보다는 서양화의 채움의 미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활보하는 주인공의 엇갈린 운명은 화려함 뒤에 남은 쓸쓸함이었다.

 

 


첫사랑은 흔히들 실패할 확률이 높다하던가 애초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는 슬퍼하기엔 이들의 선택은 현명해보였다. 쫒고 쫒기는 술래잡기 같았던 어설프기만 했던 첫사랑, 상대의 본심을 잘 몰라 어정쩡하게 맴돌다가 제 풀에 지쳐 돌아서기만 했던 그날의 추억들. 차라리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었기에 이들의 운명은 추억으로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에 동화되어 박수쳐주는 관객의 마음도 실어보낼 수 있었고.


우리 주변엔 겉으로는 알아 볼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마음속은 알 수 없다 하지 않는가 지금 가장 인기 많은 사람도 뭔가를 속이며 치부하는 지도, 지금 가장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고 있는 사람도 또 뭔가를 감추고 자신의 야욕을 펴 놓을 날만 고르는 지도 알 길이 없다. 효수(梟首)라도 해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제고하게 해야 하는 세상은 에도때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다.

 

 


이 영화는 아직은 어린 두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렇게 하고 남겨진 빈 공간은 또한 거짓에 물든 사회병리 현상에 충고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캐릭터는 도시 유곽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자, 그리고 성주였다. 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겉모습과 다른 속내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이 된다. 사랑이야기에 매몰되어 잊고 있었지만 소녀 하마지는 사냥꾼이다. 그것도 전문가인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실력좋은, 후세를 사냥하기 위해 헤어 드라이기를 확대한 것 같은 철포(鐵砲)를 들고 다니는 그녀에게 사냥은 숙명이지만 내가 아닌 또 다른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 또한 그녀의 몫이다.


사냥을 한다는 건 생명체의 목숨을 거두는 것이다. 유곽의 여자가 죽으면서 전달했던 종이 한 장은 그녀의 모든 것일 수 있고, 성주의 벼린 칼날은 모두를 위한 수호(守護)의 상징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극과 극의 위치에 서있는 처지의 사람들을 많이 담고 있다. 주된 정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포용이지만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지가 않은 모양이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화면과 마치 일본의 어느 오래된 마을을 관광하는 것같은 디테일한 묘사들은 이 영화가 주는 시각적 선물이다. 벚꽃이 필 무렵 개봉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장르 일본 판타지 애니메이션

   수입 얼리버드픽쳐스

   배급 미디어데이

   홍보 디앤디미디어파트너스 / 클루시안 

   

 

 

 

 


후세: 말하지 못한 내 사랑 (2013)

9.8
감독
미야지 마사유키
출연
코토부키 미나코, 미야노 마모루, 코니시 카츠유키, 사카모토 마아야, 카미야 히로시
정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판타지 | 일본 | 110 분 | 2013-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