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바바라 - 희망은 다음 세대에게 양보하다

효준선생 2013. 3. 19. 07:00

 

 

 

 

 

 

  한 줄 소감 : 70년대 동독의 이야기인데 별로 낯설지가 않은 이유가 뭘까?

 

 

 

1970년대 중반, 동독의 존재에 대해 우리는 알기 어려웠다. 그저 동유럽의 어느 공산국가중 하나, 독특하게 동독 땅 안에 있는 베를린이 마치 섬처럼 다시 둘로 나뉘어 하나는 서독의 것으로 나머지는 동독의 것으로 되어 있음이 매우 신기하다는 정도의 상식뿐이었다. 또 하나 올림픽에 나가면 왜들 그렇게 체육을 잘하는 지, 스펠링 긴 그 이름을 따라 읽어보던 기억이 난다.

 

 


어느 시절이든 알지 못하는 나라라고 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건 아니다. 그곳에서도 우리가 겪었던 70년대의 상황이 있었을 것이고, 오늘을 사는 그들의 다음 세대들이 그걸 복기하는 작업은 영화 쪽에서 매우 유효하다. 글과 달리 당시의 모습을 비주얼로 재현해낸다는 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영화 바바라를 보면 정말 그때의 모습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쇠락한 모습은 여전했다. 단지 로케이션의 문제뿐만은 아닌 듯 싶었다.

 

 


바바라는 여의사다. 외국에 사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출국 신청을 했다가 도리어 정보기관에 찍히는 바람에 시골 작은 병원으로 옮겨가고 기관원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야 하는 신세다. 낯선 곳에서의 외로운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 그녀의 행동거지에 잘 드러나 있다. 기계적으로 근무를 하고 집에서도 좌불안석인 건 마찬가지다. 불쑥 찾아오는 감시원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심지어 그녀의 몸수색까지 자행한다. 지금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로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음으로 양으로 그녀를 돕는 사람들도 있다. 음으로는 남자친구가 알음알음 보내주는 돈이며 양으로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남자 의사 안드레다. 그 역시 도시의 병원에서 근무하다 의료기 사고로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동료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바바라는 결코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 어쩌면 안드레도 믿을 수 없는 대상으로 여긴 모양이다.

 

 


이 영화는 매우 건조하다. 동선도 많지 않고 병원과 바바라의 집, 그리고 그녀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길이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바싹 마른 사이에 꿈틀거리는 인간미가 커져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병원에는 두 명의 어린 환자가 입원을 한다. 한 여자는 임신과 질병으로 인해, 한 남자는 사고로 인해, 각각 운신이 힘든 상태다. 두 의사의 치료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점차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는데, 바로 이 부분이 이 영화의 포인트다.

 

 


암울했던 시절, 당장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질식상태지만 그래도 다음 세대에게 만큼은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 기회의 시간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당위성같은 것. 안드레가 비번인 날, 일부러 기관원의 병든 아내를 치료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바바라는 모종의 결심을 하게 된다. 그건 인간의 대한 존엄이었다. 그리고 안드레와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것이었다.


늘 바람이 불어 갈대밭이 누워있다. 그녀는 집조차 믿지 못한 채 바위 틈 사이에 돈을 숨겨 놓는다. 사회시스템의 불신과 붕괴다. 은행에 맡기지 못하는 건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불안감과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공권력의 주는 폭압적 모멸감. 지금은 사라진 동독이라는 국가 체제가 만들었던 시대의 아픔과 그 안에서 꾸물거렸던 한 여자의 시름이 고스란히 녹아든 영화 바바라였다. 제62회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바바라 (2013)

Barbara 
9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
출연
니나 호스, 로널드 제르펠트, 라이너 보크, 크리스티나 헤케, 클라우디아 가이즐러
정보
드라마 | 독일 | 105 분 | 2013-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