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지슬 -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야 될 것들

효준선생 2013. 3. 16. 07:00

 

 

 

 

 

  한 줄 소감 :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서 한참을 앉게 있게 된다. 여운이 짙다

 

 

 

 

 

 


로지 그 땅을 일궈먹은 죄 밖에 없다. 일제의 군홧발에 짓밟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건만 이제 광복이라고 하던데, 육지 사람들이 몰려와 섬마을 사람들을 폭도로 몰아 죽이려 든다. 그들이 내뱉는 빨갱이가 싫다는 말, 이 오지 섬마을에서 대체 누굴 빨갱이라고 하는 지 만나면 물어 봐야겠다.

 

 


그 땅에서는 춘궁기에 들면 먹을 게 없다. 그래도 겨우내 영양분을 비축했던 감자가 거의 유일한 요기꺼리지만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기엔 부족하다. 돼지라도 잡아 온 동네 사람들끼리 포식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 곳 흑돼지는 육지의 소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마저도 이젠 우리 것이 아닌 모양이다. 이 검은 땅의 사람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하늘로 증발되려는 모양이다. 안개가 자욱하다. 그리고 그 습기가 눈과 비가 되어 내릴 태세다. 1948년 제주는 그랬다.

 

이른바 소개령이 내려졌다. 해안가에서 5km이내를 벗어난 안쪽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열외없이 내려와야 했다. 안그러면 그들은 “빨갱이”들과 함께 총살이다. 그게 국군의 옷을 입은 자들의 고함이다. 거기에 맞서는 제주 사람들의 행세는 추레하다. 어디서 주웠는지 허름한 총 한 자루가 그들의 방어 무기로 유일하다. 그들은 동굴로 숨어들어 며칠만 지나면 이 사태가 해소될 것이고, 아무개네 둘째도 낳을 수 있고 아무개네 돼지 밥도 주러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좁은 공간에 있으니 그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속내가 술술 풀려 나왔다. 동네 유일한 처녀인 순덕이를 탐내는 만철이 녀석도, 제 다리는 말벅지라고 뜀박질로 국군을 따돌릴 수 있다고 허풍치는 상표 녀석도 다들 이웃이었다. 그들 눈에, 그들의 운명은 보였을까?

 

 


영화 지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미 65년이나 지난 과거의 역사, 그리고 전부도 아닌 축소판에 불과한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는 걸까 이 영화는 컬러도 아닌 흑백이다. 간혹 눈을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그게 사람의 둔부인지, 돼지의 그것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다. 그럼에도 스크린 네 귀퉁이를 꽉채우는 일말의 불안감, 그리고 긴장감은 디테일에 대한 불평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이른바 소탕작전에 투입된 국군 몇몇과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의 총구를 피해 산등성이와 자연 동굴을 은신처 삼아 도망을 다닌 제주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어놓았다. 선과 악의 선명한 대비라고 볼 수 있지만 국군으로 나온 몇몇에겐 또 다른 모습이 보였다. 특히 신병과 일병들은 이 작전을 그저 개떡같은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그래서 죄없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위의 사람들, 즉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 눈엔, 그들은 자기가 되게 싫어하는 빨갱이고, 죽여야 하는 폭도들일 뿐이라고 한다. 이들 사이의 알력과 갈등은 일병이 발가벗겨진 채로 눈밭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과 총으로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원산폭격이라는 벌을 서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따지고 보면 이들 모두는 부림을 당하는 입장이지만 다시 명령하는 자와 명령에 복종하는 자로 나뉜다. 이 역시 은유의 대비다. 잡혀온 순덕이 악질 상사에게 겁탈을 당하고 창고에 갇혀 있을 때 그녀에게 감자를 가져다 준 사람, 산 속에서 갇혀있던 제주 사람들이 부상당한 국군에 의해 도움을 받는 장면, 이런 모습들에선 반드시 없애는 사람과 없애야 할 사람의 구분이 옷차림과 출신지역만으로는 정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많은 사건에 대해 가해자는 침묵하고 피해자는 용서를 강요받아 왔다. 이 영화도 살육의 현장에서 어쩌면 처참하게 당하는 입장의 그들에게 용서라는 화두를 슬며시 꺼내드는 것은 아닌지 싶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영화 속 임신한 엄마가 총에 맞아 숨지고 그 옆에서 울고 있던 한 갓난 아이가 성장하면서 얻어 들었던 그런 것이었을 테다. 시간이 이만큼 흘러 세상에선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무엇이 잘 못이었는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영화도 그런 차원에서 일조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을 보면 같은 땅, 같은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총부리를 겨눈 채 살의를 품어야만 살 수 있었던 때가 너무 쉽게 망각되는 것은 아닌가 처연해졌다.

 

 


얼마 전 장관이 되고자 하는 이에게 물었다.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그랬더니 이 자리에서 그걸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엔 배우지 않아도 알아야 할 것들이 꽤 많다. 격변의 세월, 압축성장의 세월을 보내며 가리워졌던 것을 들추는 게 누군가에게는 흡족할 리 없지만, 알고 있어야 하는 건 존재한다. 그게 이 땅에 태어난 天賦적인 숙명이라 할지라도. 

 

 


영화 제목으로 쓰인 지슬은 땅의 열매라는 뜻의 地實의 제주방언이다. 감자는 날로 먹으면 탈이 난다.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한다. 토벌군이 머물던 민가의 마당에 걸린 큰 가마솥이 기억에서 잘 사라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 익어가던 돼지와 그 안에서 목욕을 하던 마약쟁이 김상사와 그리고 새끼줄로 묶여있던 마지막 엔딩이. 감자를 삶아야 하는 그곳이 다른 용도로 쓰이고 생존을 의미하는 익힌 감자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한 것이라니, 이 영화의 울림은 곳곳에서그저 넘칠 따름이다.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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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드라마

  제작 자파리필름/설문대영상

  배급 영화사 진진

  홍보 클루시안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2013)

Jiseul 
8.9
감독
오멸
출연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양정원, 성민철
정보
드라마 | 한국 | 108 분 | 2013-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