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스토커 - 소녀, 이제 알을 깨고 나올 시간

효준선생 2013. 2. 20. 07:30

 

 

 

 

 

 

  한 줄 소감 :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쫀득한 맛이 제법이다.

 

 

 

* 주의 : 미성년자들은 읽지 마세요^^

 

해 나이 열 여덟의 소녀가 있다. 성인이라고 하기엔 한 뼘 정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아이라고 하기엔 뒷 태가 예사롭지 않다. 이팔청춘 꽃띠를 갓 벗어난 그녀에겐 이제 마지막 한 겹의 보호막을 제거하는 일만 남았다. 그건 어쩌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아버지로부터의 성(姓)을 버릴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시작점, 시골 논두렁 위에 선 소녀의 눈빛은 형형하다 못해 결기에 가득차있다. 뭔가 노려보는 듯한, 마치 인생을 관조하듯, 철학적 레서피를 읊조린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킬 수 있겠다는 의지의 발현처럼 보인다. 소녀는 왜 그곳에서 바람을 맞서고 있나. 열 여덟 처녀의 몸을 가리고 있는 치맛자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영화 스토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은유로 가득한 오프닝 씬을 열거하고 말았다. 시대불명, 장소불명, 대충 근 시대 어디쯤, 혹은 미국 중부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 으레 보이는 2층, 혹은 다락까지 포함하면 3층 쯤 되어 보이는 저택에 사는 사람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검은 슬픔이 압도한다. 집주인의 장례식이 있다. 한국과 달리 사람이 죽었지만 오열같은 건 없다. 더운 모양인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채 부채를 연신 흔들어 대고 있다. 모녀,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자 약속이라도 한 듯 등장한 삼촌.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은 일찌감치 이 영화를 사이콜로지컬 스릴러라고 장르매김 하길 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스릴러면 스릴러지 무슨 의미로 심리학을 덧붙인 걸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보기 시작했다. 의문은 대개 두 가지 갈래에서 파생되었다. 갑자기 등장한 찰리 삼촌은 누구인가. 구체적으로 주인공인 인디아와 어떤 관계일까? 친삼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심증은 엔드 크리딧이 올라가기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또 한가지 만약 그가 친삼촌이라고 치고, 엄마와 인디아 사이에서 마치 전지전능한 조율자처럼 행동하는 그는 실제하는 인물인가?

 

자꾸 사이콜로지라는 단어에 매몰되다 보니 프레임에 갇힌 꼴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관객으로서 그건 단점이 아니다. 좀더 집중해서 좁지만 깊게 삼촌과 졸지에 미망인이 되어 버린 엄마, 그리고 이제 열 여덟살이 된 소녀 인디아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주인공들의 동선은 거의 집 안팎에서 맴돌게 구성했다. 간혹 인디아의 학교가 등장하지만 그곳은 인디아에겐 불필요한 공간이라는 설정을 위한 곳이었다. 만약 그곳이 없었다면 인디아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도 알 수 없었고, 동년배 또래 남학생들의 해코지가 없었다면 그녀가 아직은 처녀라는 사실도 알 수 없었을 수준의 장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인디아는 이성으로서 접근하는 남학생에서 연필을 들고 거부신호를 보내는 야멸찬 여학생임을 증거했다. 다시 말해 학교와 또래 남학생은 그녀를 소녀에서 성숙한 여자로 만들어주는데 기능하지 못하며 또 다른 누군가, 이미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결국 학생이 학교가 아닌 집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절대적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열 여덟살 생일날 처참하게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찰리 삼촌이 메운 것이다. 또 하나의 역할은 엄마다. 그녀의 엄마는 친 엄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부엌일도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고 하루 종일 집에서 이브닝 드레스만 걸치고 어슬렁거릴 뿐이다. 그런 엄마에게 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디아에겐 이제 선택지는 단 하나다. 찰리 삼촌.

 

 

 

이 영화는 이미지가 보여주는 은유가 상당하다. 피아노를 치는 소녀의 검은 스타킹위로 거미가 지나간다. 그리고 은밀한 부위로 진행한다. 그걸 느낌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지만 숲 속에서 일이 터지고 흙이 잔뜩 묻은 흰 옷을 벗어낸 소녀는 샤워를 하며 울부짖듯 수음에 몰두한다. 마치 부화를 앞둔 난생동물이 탈각을 시작하려는 모습이었다. 피아노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찰리 삼촌과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장면은 돌리지 않고 말해 성행위다. 이 두 사람의 유사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면은 또 있다. 모래위에서 마치 나비처럼 사지를 펄럭거리는 남자아이(찰리의 어린 시절)와 자신의 방 침대위에서 역시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인디아, 끈적한 근친애를 의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삼촌과 조카의 관계는 파국에 이르러야 마땅할 거라는 관객의 의심과 추정은 분명 같은 길을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감독은 이미 밝힌바 있다. 이 영화 그냥 스릴러가 아니라고. 그러니 헛다리 짚지 말라고.

 

 

 

이 영화의 한 인물이 보이는 輕度의 정신분열은 소녀의 “早熟”을 생각보다 일찍 이끌어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미 그 만큼의 세월을 이미 살았을 전 세대에게 보내는, “나도 끼어달라”는 신호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음은 이미 성인이 된 사람이라면 몸으로, 혹은 정신으로 경험했을 법 하다.


아이에서 사춘기를 지나 2차 성징이 일어나고 세상의 이치를 스펀지처럼 흡입하며 몸도 뇌의 용적도 더불어 커가는 시절,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 같던 그 때를,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소년 소녀가 있는 반면, 어떤 소년 소녀들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받아야 가능한 경우도 있다. 외부와의 접촉이 희소한 경우,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인디아에겐 틀림없이 후자의 케이스라고 보인다. 유일한 남자인 찰리 삼촌은 그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외부로부터의 자극이었고 그걸 받아들이는 인디아는 딱딱한 껍질을 깨기 위해 그동안 축적된 보잘 것 없는 미성년의 힘을 다했던 것이다.

 

 


세상에 없는 아버지와 사냥을 나선 소녀, 총을 잡고 사냥감을 노려보던 인디아를를 향해 아버지는 옆에서 연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녀는 격발했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스토커”는 소녀 인디아에겐 결별이 멀지 않은, 상처 후에 굳어버린 딱지일까 아니면 아버지가 선사한 최후의 선물일까  (양진석의 씨네필 소울)

 

 

 

 

  장르 스릴러

  수입 배급  20세기 폭스 코리아

  홍보 마케팅 올댓시네마 / 웹스프레드

 

 

 

 

 

 

 

 

 


스토커 (2013)

Stoker 
9
감독
박찬욱
출연
미아 바시코브스카, 매튜 구드, 더모트 멀로니, 재키 위버, 니콜 키드먼
정보
드라마, 스릴러 | 미국 | 98 분 | 2013-02-28